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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Mar 23. 2022

깻잎은 모르겠고요. 그냥 평화롭고 싶어요.

ep. 100 장기하-부럽지가 않어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100번째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1, 2, 3기를 거쳐오며 함께하는 작가님들과 매주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3년째 이어오고 있는 수플레 매거진은 매주 추천곡과 함께 개성 있는 이야기를 던지고 있습니다.

 수플레의 100번째 추천곡은 장기하의 신곡 '부럽지가 않어'입니다. 갈등 상황을 유쾌한 가사로 풀어내는 건 장기하라는 가수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요?


https://youtu.be/5oPQtzZYVEQ




 빨강과 파랑 중에 어떤 게 좋냐는 질문은 평소에는 단순히 색깔 선호 조사처럼 들리지만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진중해졌던 시즌이 얼마 전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빨강의 승. 올해 1분기 중 가장 흥미진진했던 새벽의 결전이었다.



 대선 일주일 전 대학 동기들과 후보자 토론 방송을 보았다. 스무 살에 만나 소맥과 노래방으로 같이 밤을 새우던 친구들과 있으면 가끔 우리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어색하기만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우리가 정치를 이야기할 때이다. 각자의 정치 성향이 극과 극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가능하기도 하지만, 밥상 앞에서는 가족과도 정치 얘기는 하지 말라는 말이 상용구처럼 사용되는 사회에서 소주를 몇 병씩 비우고도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내심 흐뭇했다.   


"누가 대통령 되는지 맞춘 사람이 다음 만남에서 계산하기?"

 3명은 파란색에 2명은 빨간색에 내기를 걸었다. 그리고 다음날 집에서 대선 개표 방송을 보며 실시간으로 톡을 나눴다. 그중 한 방송사의 개표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개표 방송이 이렇게까지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워도 되나, 혹시 담당자의 책상이 사라지지는 않으려나, 걱정될 정도로 핫한 아이템과 참신한 스토리를 반영해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결과에 따라 일상이 좌지우지될 경우에는 마냥 웃으며 볼 수만은 없었을 테지만 적어도 나같은 평범한 대중들은 결과와 관계없이 재미있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최근 몇 달간의 뉴스를 지켜봐 온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해 떠올리는 주요 키워드를 묻는다면 '갈등'과 '대립'과 같은 부정적인 개념이 먼저지, '화합'과 '포용'같은 긍정적 단어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뉴스 전문 채널을 보는 게 모닝 루틴이라 아침부터 상대의 말실수에 꼬리를 물고 트집을 잡는 정치인들의 인터뷰가 뉴스의 초장을 장식하는 걸 꽤 자주 보게 된다. 친구들과 싸울 때나 나올법한 단어들과 그걸 내뱉으며 오가는 고성을 듣고 있자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정치'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말해봐"


 그와 반대로 이번 개표방송의 유쾌한 연출을 보면서 갈등을 다루는 언론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단 클릭 유도 기사와, 팩트보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교묘하게 주입한 기사를 보면 어디까지를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할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정치'를 떠올렸을 때 드는 부정적 감정을 조금은 유쾌하게 풀어내려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왜 정치가 싫을까


 학생 시절엔 '토론'이 있는 수업을 웬만하면 피했지만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땐 수업 전부터 고역이었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견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느끼던 감정은 토론이 고조될수록 격앙되는 양 집단 간에 느껴지는 긴장감과 불편함이었다. 상대방의 의견이 타당하고 충분히 설득될 수 있음에도 거기에서 허점을 찾아내어 토론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몇 시간을 팽팽하게 논쟁하고 나면 기가 빠지고 반대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보는 것도 유쾌하지 않았던 반면 토론을 즐기는 사람들은 '토론은 토론일 뿐', 나처럼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긴장감과 불편함이 곧 '갈등' 상황과 같이 느껴졌고 의견이 다른 상대방과 대치되는 상황이 싫었다.


 나에게 '정치=갈등'이었다. 고백하자면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핑계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일상이 마비되는 나로서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갈등의 문고리를 여는 일과 같이 느껴졌다. 반대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보면 논쟁과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치란, 서로 신념이 맞지 않는 양 그룹 간 '갈등'과 '대립'이 곧 인신공격과 편 가르기로  이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과도 같아 보였다. 정치는 단순하게 거대 양당의 대립이나 비리, 권력 쟁취 같은 부정적 개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라는 주제 자체에 대한 대화를 피하기 위해 관심이 없다고 얘기해 왔던 것 같다.




갈등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민초단 VS 반민초단, 깻잎 떼주기에 대한 찬반 의견이 나뉘어 논쟁을 펼치는 것이 흥미로운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난 민트초코쉐이크는 좋아하지만 그외 민트초코는 불호이며 깻잎은 떼주든말든 별로 신경쓰이지 않지만, 만약 이 토론에서 "난 어느쪽이든 별 상관없는데?"라고 하면 이 재미있는 논쟁에 몰입을 하지 못하는 진지충이 되어 모임 제거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하고 멋있는 대중들은 갈등을 논쟁으로서 심각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심지어 '정치'에서도 말이다.


그럼 '정치'에서 느껴지는 긍정적인 키워드는?


'정치'를 떠올리면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국가도 있으니, 대한민국도 언젠가는?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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