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 오반 - 산책
3월, 분명 봄이 온 것 같기는 한데 출근길 의상 선택은 번번이 보기 좋게 실패하는 요즘이에요.
기분 좋게 꺼내 입은 봄 옷 사이로 파고드는 쌀쌀한 기운에 매일 아침 날씨한테 배신이라도 당하는 기분이랄까요.
101번째 수플레로 고른 곡은 오반의 <산책>입니다.
'산책이나 할까, 오늘도'
가볍게 말을 걸며 시작하는 이 노래는 듣는 순간 마음이 싱그러워져요.
이 노래를 고른 이유는 아주 명확합니다. 봄날에 걸으며 듣기에 딱인 노래거든요.
아쉽게도 아직 완연한 봄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쌀쌀하지만 곧 따뜻해질 어느 주말에 길을 걸으며 가볍게 들어보시길 추천드려요.
특히 얇은 카디건이 어울리는 어느 봄날의 밤 산책길에 들으면, 더 완벽한 선곡일 거라고 확신해요.
지난 주말, 오랜만에 늦게까지 카페에서 밀린 일을 끝냈다. 잠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왔을 때 엄마에게서 온 전화가 울렸다.
엄마의 요즘 관심사 중 하나는 새롭게 알게 된 동생의 남자 친구. 매번 시시콜콜 연애 얘기를 보고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오랜만에 제대로 듣게 된 동생의 연애가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고 나는 열심히 질문에 대답하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한창 이것저것 묻던 엄마가 무심한 척 물었다.
“넌 요즘 어쩌고 있어?”
갑자기 훅 들어온 엄마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난 뭐… 그냥 재밌게 살아.
요즘이 너무 좋아서 이대로 쭉 살까 봐, 나.”
장난스럽게 대답하면서도 괜히 눈치가 보이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싶었다.
나 스스로 뭔가에 필수적인 나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점점 엄마, 아빠의 주변에서 한 마디씩 훈수가 들려올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을까.
엄마 아빠의 마지막 숙제가 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웃긴 생각이 가끔 종종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던 요즘이었다.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쿨한 엄마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렇게 살아. 엄마 아빤 상관없어. 네가 결혼을 늦게 하든, 안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냥 네가 살아볼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으로 살아.”
전화를 끊고 왠지 든든해진 기분으로 가로등이 켜진 밤거리를 조금 더 걸었다.
내가 살아볼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올해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모습으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걷다 보니 문득 겨울 내내 시리던 손끝이 더 이상 주머니에 넣지 않아도 시리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분명 봄이 오긴 한 것 같다.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