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행복하지 않다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by 비소향

나 : 너 왜 울어?

M군 : (훌쩍훌쩍)

나 : 너.. 또 숙제 안 했어? 어?


M군은 초등학교 6학년 학생으로 저와 주 3회 이상 만나는 학생입니다. 평소 숙제를 완벽히 하지 못해 혼나기도 하고 매도 참 많이 맞은 학생입니다. 어제도 M군은 제게 숙제와 거짓말로 크게 혼이 났고 다음날인 오늘도 제가 책상에 앉자마자 울기 시작합니다. 숙제 때문이겠지 생각하고 숙제장을 검사해보니 역시나 숙제는 반 이상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책상에 앉자마자 우는 경우는 처음이기에 혹시나 해서 물어봤습니다.


나 : 너 왜 그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M군 : (고개만 절레절레 흔듭니다.)

나 : 숙제 안 해서 우는 거야?

M군 : (고개만 숙인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나 :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선생님이 듣고 해결해주던가 하지.. 뭐 때문에 그래..?

M군 :............ 요새 너무 힘들고............ 행복하지 않아서요.




한참 있다 M군이 제게 한 말은 '행복하지 않다'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입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 참 낯설지만 묘하게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숙제가 너무 많다.. 공부가 힘들다.. 하기 싫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듣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M군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니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놀 수 있었는데 제 수업 때문에 집에 일찍 와야 했고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그 길이 너무나 서럽고 힘겹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엄마에게 놀고 가면 안되냐고 허락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엄마의 쓴소리뿐이었기에.. 그만 울음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학습만을 강요하며 제가 이 아이의 행복을 뺐는 건 아닌지 문득 걱정이 되어 아이에게 협상안을 제시했습니다. 하루만큼은 네가 친구들과 놀 수 있도록 시간을 바꿔주겠다.. 그랬더니 그것도 싫다고 합니다.

시간을 바꾸는 대상이 자신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M군 수업을 갑자기 중간에 배치할 수는 없기에 그럼 네가 정말 놀고 싶은 날 선생님한테 미리 연락하면 하루는 빼고 대신 주말에 수업하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게 평소에 숙제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면 선생님이나 어머니가 하루쯤은 네가 친구들과 놀 수 있게 허락해주셨을 텐데... 왜 이제껏 그렇게 안 했느냐고 아이를 다그칠 수도 있었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에게 이틀 연속 모진 말을 쏟아낼 수는 없기에 그렇게 우리의 대화를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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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아서요...

M군의 말이 하루 종일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행복한 순간이 지속되면 그 행복을 계속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까? 아니겠지? 그래서 우리는 그 행복한 순간을 얻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거야..라고 M군을 위로했지만 사실 그 위로는 진실된 위로가 아녔습니다. 저 스스로도 행복한 순간을 얻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행복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제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도 잊은 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를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학습은 재미있기 보단 의무가 우선되어야 하기에 그 학습을 담당하는 저와의 만남이 분명 행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겐 스스로 행복한 순간들을 찾으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가장 즐거운 때가 언제인지.. 그 시간들이 왜 네게 행복을 주는지.. 등을 생각해보라고 말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 때, 태양의 후예를 볼 때와 같은 행복도 좋지만 그것을 넘어선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는 것... 그 행복함을 찾은 친구들은 좀 더 삶을 의욕적으로 살 것이고, 그 행복함을 찾지 못하고 졸업한 친구들은 시간에... 그리고 주어진 일에 쫓기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제 모습처럼.


행복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을 살다 보면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저 내게 아무 노력없이 주어진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게 행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찾아보고 그것을 위해 주어진 시간과 열정을 쏟는 사람의 모습이 더 눈부시고 멋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저부터... 지금부터라도 내게 행복을 주는 것을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연습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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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하여

오늘 제 마음을 두드린 글을 함께 적어봅니다.


살아보니 그런 것 같다.

좀 바보 같은 친구가 오래 남는다는 것과

그 바보 같은 친구도 쉽게 생각하는 순간 떠난다는 것.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돈이 많아지는 만큼, 외로움도 커진다는 것.

사랑은 할수록 모르겠다는 것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 때는

내 주제를 몰랐을 때 가능했다는 것.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알지만,

그렇게 살기엔 나는 너무 멀리 왔다는 것.


이제 내 행복의 기준은 남의 시선으로 충족된다는 사실과,

그럴수록 진심 어린 사랑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남들 눈에 멋진 애인

남들 눈에 멋진 차

남들 눈에 멋진 생활

남들 눈에 멋진 직업


진짜 행복은 늘어지게 자고 초췌한 모습으로 일어난 토요일 오후,

이런 모습을 사랑스럽다 말해주며,

내가 어제 먹고 싶다 했던 김치찌개를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인데.


결국 우린 벗어나질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남의 시선을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이고,

남들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서 물건들을 사서 입고, 타고 모을 테지만


언젠가는 알아차리겠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단순히 관심이 부족해서,

나를 봐달라는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돌아갈 수나 있을까?

그러기엔 너무 많이 가져버렸나.


-손씨의 지방시 '이래서 나에게 와서 핀 꽃은 모두 시들어버렸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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