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의와 진실 앞에서
수업을 다니다 보면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학생들을 만나곤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교육적,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특혜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분명한 현실입니다. 어릴적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기에 때론 타인의 부족함을 공감하지 못하고 현재 나의 불편만을 생각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답답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학습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불평등'을 경험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느끼진 못하겠지만 그것이 엄연한 자본주의의 현실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자본주의의 모습을 힐난하거나 부조리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학생들 스스로가 이런 현실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점이 이 글을 쓴 계기입니다.
교과서에 착취나 억압 같은 껄끄러운 단어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예를 들어 흑인에 관한 글에서 '궁핍'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궁핍'은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가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 딸꾹질이나 감기, 천둥처럼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나의 사회계층에 대해) '너무 적게 가졌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회계층에 대해) '너무 많이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문장에 '너무 적게'와 '너무 많이'가 동시에 나오면 우리가 단지 고통의 땅이 아닌 불공평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교사로 산다는 것>_P109
학교에선 불평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주입식 교육은 학생들이 생각하게 하기보단 기존의 지식을 더 많이 암기하게 하고 암기를 잘한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상류층 학부모들은 내 자식이 암기를 더 잘하게 하기 위해 어마 무시한 사교육비를 써가며 아이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자 하고 그것이 잘 되지 않으면 유학을 통해 좀 더 나은 학벌과 외국어 실력으로 내 아이를 엘리트로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어느 시대나 불평등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는 임금과 선비, 농민과 백정 등 엄연한 계급이 존재하였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자본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층이 나뉘어 있습니다. 교육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도록 다양한 학습자료를 통해 서로 토론하고 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부유한 한 가정을 위해 수많은 가난한 가정의 가장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최상류층도 아니고 극빈층도 아닌 중상층 가정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은 조금 소유하고 어떤 사람은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의존한다는 사실 또한 알려주어야 하고 생각하게 하고 행동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다양한 생각과 논리들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생각하게 하는 수업이 일주일에 적어도 1~3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국어, 영어, 수학은 그렇다 쳐도 경제, 사회, 역사 수업만큼은 이 사회를 좀 더 현실적으로 인식하여 바라볼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학습의 목적은 교사와 학생 모두 그게 무엇이든 간에 큰 사안에 직면하면 차근차근 작은 투쟁부터 시작하려는 자발적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사학재단 비리로 인해 한 동안 몸살을 알았던 학교입니다. 영화 '두사부일체'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저희 학교는 갖은 비리를 저지른 이사장 퇴출을 위해 교사와 학생 모두 교실을 뛰쳐나와 데모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그때, 전교생은 근처 법원으로 가 시위를 하기도 했고 비리 이사장과 결탁한 교사의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수업이 진행이 되지 않자 전교생의 반은 이웃학교로 전학을 가기도 했고 교육부는 불안정한 학교사태를 우려해 신입생을 받지 못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리한 투쟁 끝에 결국 이사장 일가는 학교재단에서 물러났고 학교는 정상화되었습니다. 군중 무리에 휩쓸려했던 행동(데모)들은 아무것도 남길 것 같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행동과 생각들은 사회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제 관점을 보다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불공정한 체제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장소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이다. 어떤 경우든 '더 큰 상황'을 조용히 인식하면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부터 실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로, 우리가 꿈꿀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수단을 써가며 노력해야 한다. 이런 방법을 강조하면 학생들이 불필요한 슬픔을 과도하게 겪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더 큰 악을 없애기 위해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개인을 자책감에서 해방시켜 세상을 덜 고통스럽고도 덜 불공평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보람되고 만족스런 투쟁의 첫 걸음이다. <교사로 산다는 것>_P114
불평등은 사회로 나오기 이전에 학생들이 먼저 교실에서 배워야 합니다.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어떤 논리와 구조로 이 사회가 돌아가는지 학생들은 어렴풋이나마 배우고 토론하고 더 나아가 조그만 행동이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 우리는 사회에 나와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책이 보여주지 않은 사건의 이중성, 도덕적인 것과 비도덕적인 것의 경계, 내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법,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방법 그리고 불평등한 우리 사회를 살아내는 힘 등 기존의 지식을 주입하는 것 이상으로 필요한 교육들이 널려 있지만 제대로 행해지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교육도 아주 많이 개혁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쉽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끝으로 조너선 코졸의 <교사로 산다는 것>이란 책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합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불평등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도 이 책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종종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교육에 종사하는 분이라면... 내 아이가 좀 더 바르게 자라도록 원하는 부모님이라면 한 번쯤 일독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