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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소향 Mar 30. 2017

나다움을 지켜낸다는 것

#4 여운이 남는 독서리뷰_ 1. 사생활의 천재들 

하루 일과가 끝날 때면 그저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노력과 신념으로 하루하루를 채워 나간 것이 아닌 한 달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오늘 하루 나 자신을 소비한 기분이 든다. 

바쁜 하루를 보낼 땐 우린 일상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지만, 잠시 숨 고를 시간이 주어지면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넌 지금 잘 살고 있냐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냐고. 


'일상'은 매우 중요하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에 대한 평가, 가치 그리고 손에 쥘 수 있는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상은 이토록 중요한데 우린 대부분 자신의 일상을 후회한다.  

살아가면서 자꾸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만 갖고, 내 의지와 생각은 자꾸만 사라져만 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일상이 자꾸만 후회된다고 하여 일상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 일상이 흔들리면 가족도, 사랑도, 자신의 경력도 모든 것이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흔들리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나다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 회사원인 우리는 나다움을 찾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지만 찾을 수 없다. 

회사에서 나다움을 찾는 건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나다움 따윈 중요치 않다. 실적과 나다움은 별개의 문제이고, 개인의 특성과 업무는 별개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회사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기에, 개개인의 생각과 일상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모든 초점이 맞춰진다. 그래서 우린 회사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일상의 괴로움을 느낀다. 


우린 나다움을 사생활에서 찾아야 한다.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은 회사생활과 사생활로 나뉜다. 회사생활이 사생활을 침범하는 경우가 꽤 있지만 우린 사생활을 지켜 내야만 어쩌면 나다움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마다 각기 다른 사생활을 통해 나다움을 찾는다. 어떤 이는 산을 오르내리고, 또 어떤 이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통해 나다움을 지켜낸다. 나는 어떠할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고 책을 읽고, 그것을 오롯이 '좋은 글'로 담아내기 위해 주말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게 난 나다움을 찾아간다. 

개인의 사생활은 그렇게 일상을 지켜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책이 있다. '사생활의 천재들'이란 제목의 이 책은 저자인 정혜윤 PD 지인들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감독 변영주, 사회학자 엄기호, 만화가 윤태호 등 회사원이 아닌 사람들의 사생활을 다룬 책이다. 사실 남의 사생활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사생활은 있지만 그것이 그 사람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전히 이 책을 집게 된 건 목차 때문이었다. 


자기 삶의 천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존재를 비추는 만남에 대해서

인간의 서식지에 대해서

보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와 듣기에 대해서

불안에 대해서

우리라는 별자리에 대해서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볼 때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질문들이 책의 목차였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되는지, 난 어떤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느끼는 불안은 어떤 것인지, 오늘 하루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해 책을 읽으며 생각해봤다.  


1.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남들 눈에 비치는 내 모습에 집착하는 문화, 집단 내에서의 평가에 개인의 자존감이 좌우되는 문화 아래서 성형 중독, 사교육 중독, 학력 위조, 분수에 안 맞는 호화 결혼식 등의 강박적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사실 이건 모두 같은 현상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 봐 밥을 굶고 지방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 사생활의 천재들 중에서 (영화감독 변영주편)

나다움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남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우린 모두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만 남을 의식하며 살 필요는 없다. 보여지는 것을 너무 중요시했기에 보여지지 않는 내면의 상처와 생각들은 그동안 방치하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

집단 문화 속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나만의 고유한 것들은 잊어버린 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어쩌면 내 자신이 고유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살아갈 수 있다. 남들도 그렇게 살아가니까...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니깐 옆 사람보다 좀 더 나아 보이고 싶은 욕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슷비슷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니깐 내 아이가 좀 더 점수를 잘 받았으면 좋겠고,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하니 옆에 친구보다 좀 더 좋은 곳에서 하고 싶은 거고, 

같은 대리니깐 저 대리보단 내가 나아야 승진이 될 것 같고, 

....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면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가면 된다. 문제는 이렇게 채웠을 때, 또 다른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상위권으로 올라간 내 아이가 이제는 전국권이 되기를 바라고,

결혼식을 화려하게 했으니 그에 못지않게 내 아이를 최고급 환경에서 키우고 싶고, 

과장이 되었으니 이제 또 다른 과장들과 차장이 되기 위한 경쟁을 시작하고..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다움을 찾지 못하면 이러한 경쟁사회 속에서 우린 분명 방향을 잃게 된다. 삶은 늘 경쟁이다. 그런데 우린 가끔 왜, 누굴 위해 이런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맹목적인 경쟁으로 내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 보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일상을 임시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현재는 참고 견디면 되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현재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중요한 일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 일어납니다. 훗날 일어날 일이 우리 현재를 보상해줍니다. 우리에겐 미루어두는 것이 있습니다. 우린 내일은 나아지리라 라는 기대 때문에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일을 미루고 미룹니다. 현재가 소중하다는 말의 의미는 추락합니다. 
현재는 뭔가를 준비하는 시간에 불과하고, 절제의 시간이고 인내의 시간입니다. 절제. 인내.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이 공허하게 변하는 묘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우린 현재를 수단에 바칩니다. 우린 수단만 있으면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목적지는 자꾸만 뒤로 멀어져 갑니다. 너무 많은 수단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단이 너무 많으면 반드시 목적을 잊게 됩니다. '내가 대체 이 수단들로 뭘 하려는 거지?' 이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의미로 물들이고 우리의 애타는 시간을 빼앗아 버립니다. 

- 사생활의 천재들 중에서 (청년유니온 조성주편)

7번 마을버스 안 사람들,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2호선 지하철에 내 몸을 구겨 넣고, 매일 같은 학생, 학부모를 만나며 하루가 지나간다. 그게 나의 일상, 흔한 우리의 일상이다. 

사람은 보고 듣고 읽으며 생각하는 만큼 내면은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우리 내면을 가꾸기 위해 하루 동안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였는지가 그만큼 중요하다.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들으며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새로운 세상을 접하기 위해 책을 읽고,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한다. 

미래의 삶을 위해 현재의 삶이 저당 잡히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도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게 어쩌면 지금의 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니깐. 


3. 불안에 대해서 

불안을 극복하는 두 가지 장법은 첫째, 도를 닦는 것, 곧 참선과 같은 것이고, 둘째는 옆 사람과 자꾸자꾸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섞여 있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돈 없이 행복하게 사는 걸 익히는 겁니다. 돈 없이 품위 있게 사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돈이 없어서 오는 불편함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만약에 정 돈이 없어서 '난 시골 가서 폐가 하나 얻어서 살래'라고 결심해도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려고 한다면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알게 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것만 있으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는,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들고 싶은 것 그것 하나가 있다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아주 소중한 거 하나만 남기고 다 비울 수가 있게 됩니다. 그 소중한 것을 지키고 사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버리는 쪽으로 자기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 사생활의 천재들 중에서 (정치경제학자 홍기빈편)

'넌 좀 되는대로 막살아봐라. 넌 우리 중에 제일 똑똑했고, 생각도 많았고,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도 불안해하잖아. 대체 뭐가 문제냐. 나 같은 애도 그냥 사는데 넌 왜 맨날 그렇게 조급하게 살아..'

친한 대학 동기가 술자리에서 내게 말을 건넨다. 어릴 적부터 불안을 안고 살아온 난 그 불안을 떨쳐내는 게 참 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평생 불안감을 갖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안의 근원은 결국 돈과 일에 대한 문제였다. 일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과 그에 따른 수입의 불안정성이 내 불안의 근원이었다. 

불안의 종류는 다르지만 우린 모두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잘 나가는 친구와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해지는 내가 되겠지만 난 그 불안을 떨쳐내야 한다. '돈이 없어서 오는 불편함에 맞서는 용기'가 당장 수익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보다 지금 내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풍요로운 삶을 꿈꾸지만 누구에게나 풍요로운 삶이 열려지는 것은 아니다. 때론 가난할 줄도 알아야 하고, 결핍에도 맞서는 법을 몸으로 배워야 한다. 

'남들만큼'이라는 기준으로는 우린 만족할 수 없다. 

불안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을 갖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아야만 우린 불안과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요새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합니다. 불안을 없앨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불안이 많이 사라집니다. 불안 없는 삶을 꿈꾸기 때문에 불안해집니다. 인류 역사에 인간이 불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불안은 삶의 일부분입니다. 불안과 어떻게 친구가 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불안을 내 친구로 만드는 거죠. 
저는 돈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유학을 갔는데 경제적 불안이든 미래에 대한 불안이든 불안은 내 친구일 수밖에 없단 생각을 해야만 했습니다. 

- 사생활의 천재들 중에서 (정치경제학자 홍기빈편)




분야가 각기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엮기 위해 '사생활'이란 단어를 가져왔지만 글은 사생활이란 단어로 뭉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어쩌면 영화감독에게는 사생활에서 접하는 경험이 영화의 소재가 될 것이고, 미생이란 작품을 만들어 낸 윤태호 만화가에겐 자신의 삶 자체가 만화 속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른다. 

글 속 그들의 이야기에는 회사생활과 사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난 그게 좀 아쉬웠다. 


영화감독이 만화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정치경제학자가 영화 얘기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거기에 그냥 우리처럼 회사 다니는 사람의 사생활도 조금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유의미했던 건, 살아가면서 한 번쯤 생각해보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었기에... 그 질문에 모두 답할 순 없어도 생각은 해볼 수 있었기에..

그게 좋았다. 


이렇게 나다움을 지켜 나간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고, 글을 씀으로 인해 일상과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나간다. 마치 복면을 쓴 사람처럼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마주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사생활을 통해 '나다움'을 지켜 나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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