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남자의 독법_9. 꼬리물기 독서와 계독
책에서 접하는 글 대부분은 휘발성이다. 읽을 땐 감명 깊게 읽어내려 가지만 책의 끝장을 넘기고 나면 책 내용 중 60%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대 후반에 알게 된 독서의 즐거움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독서를 시작했지만 한해 한 해가 지날수록 책 내용은 조금씩 흐릿해져 간다.
그러다 일상생활이 바빠지기 시작하면 독서에 대한 관심과 집중도가 떨어진다. '바쁜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딨냐'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고민이 있을 때 책을 집어 들어도 책 내용은 온전히 내게 들어오지 않는다. 자꾸 책 이외의 것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독서를 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물음에 책 추천을 받기도 하고, 다양한 독서법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우린 쉽게 책과 친해지지 못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 환경,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독서법이나 책 추천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독서법을 말하는 이유는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다르더라도 누구에게나 조금은 도움이 되는 독서법이 있기 때문이다. 독서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도움이 되었던 2가지 독서법을 말하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쉽게 말해 책 속의 추천된 다른 책을 읽어 내려가는 방식의 독서이다. 일전에 언급했듯이 난 책 뒤편에 참고문헌이 나열된 책을 좋아한다. 읽고 있는 책 내용이 좋았다면 참고문헌 속 관심이 가는 또 다른 책을 계속 읽어 내려가는 방식의 독서는 책 선택을 하는데 있어 실패할 확률을 줄여준다.
참고문헌이 아니더라도 저자가 추천한 책이 글 속에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책들은 책갈피 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 읽어보곤 한다.
대표적인 꼬리물기 독서를 할 수 있는 저자는 유시민이다. 유시민의 책을 들여다보면 그의 독서력을 알 수 있을 만큼 여러 권의 다양한 책들이 소개된다. 그의 글도 매력 있지만, 그가 소개하는 다른 책 또한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저자의 글이 좋아지면,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게 되고, 저자가 읽었던 글을 쫓아서 읽게 된다. 그럼 자연스레 생각이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꼬리물기 독서는 독서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독서법이다. 이렇게 책을 읽는다는 건 음악 감상과 비슷하다. 만일 어반자카파라는 가수의 노래가 좋으면 그들과 비슷한 노래를 하는 가수나, 그들이 추천하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 관심이 간다. 정승환, 백예린, 바닐라 어쿠스틱, 옥상달빛과 같은 가수들의 노래가 좋은 것도 이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한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는 독서법이다. 계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중복되는 내용을 반복해서 읽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분야에 대해 그만큼 더 파고드는 것이기 때문에 꽤나 도움이 되는 독서법이다.
문제는 올바른 계독은 경험 상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계독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먼저 계독할 책을 선정하는 게 쉽지 않다. 비슷한 수준의 책을 여러 권 읽는다고 해서 그 주제에 관해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주제별 난이도를 설정하여 조금씩 깊이 있게 파고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책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다.
계독이 어려운 두 번째 이유는 읽어야 할 책이 선정되어도, 한 분야의 책 여러 권을 집중해서 읽는 것이 쉽지 않다. 읽을수록 책 내용은 어려워지고 처음과 달리 흥미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 계독은 아주 훌륭한 독서법이 될 수 있다. 독서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내게도 계독은 쉽지 않다. 흥미로운 신간들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아직 나의 독서력도 깊이 있는 독서를 하기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우린 계독을 추구해야 한다.
독서를 통해 실질적으로 얻는 생각, 지식, 행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추구하기에 계독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요즘 독서가 쉽지 않았다. 일상을 살아가며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독서할 때 영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부러 책을 들지 않았다. 읽고 정리하는 것이 참 좋았는데, 어느 순간 그것도 힘겨워하고 있는 날 발견했다. 방향성을 잃은 의미 없는 독서만 하고 있는 것 같고, 독서 이외의 것들에 눈이 자꾸 갔다.
이 글을 쓰는 건,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4월부턴 다시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겠노라는.
잃었던 나의 독서생활을 다시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