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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주로가 있는 밤 Jan 22. 2022

사실 공항이든 공장이든 취업하고 싶었다.

- 활주로가 있는 밤 연작

그날,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문자를 기다리다 합격자 조회 홈페이지에 내 이름을 입력했다.


-합격-


어머니의 웃음과 아버지의 박수, 그리고 여자 친구의 울먹임과 함께

나는 공항 활주로에서 일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일할 줄 몰랐다. 알았으면 무당으로 먼저 취업했겠지, 정말 닥치는 대로 원서를 썼다. 서류전형에서 떨어질 때에는 여기는 나와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필기에서 떨어질 때에는 어떤 부분이 공부가 부족한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일차 그리고 최종 면접에서 떨어질 때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게 최선이냐고 되묻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고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여러 곳에 불합격했다. 


사람의 기분과 기운에 따라 인생의 큰 전환점인 직업이 결정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가. 뜬 눈으로 그다음 날 있을 면접을 생각하는 밤이면 항상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문장을 되새김질했다. 더 쉬운 기회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려운 길을 선택했던 나에 대한 자책감과 다들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데 나만 서있는 것 같다는 조급함, 그리고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을까’에 대한 근거 없는 원망이 ‘불합격’이라는 3글자에 의해서 ‘그러면 그렇지, 내가 될 리가 없지’라는 체념으로 바뀌는 모습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 마음 때, 겁나는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항상 뭔가에 의해 어딘가로 쫓기고 있었다. 쫓기는 풍경은 내가 공부하러 가던 복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아침이 되면 그 복도를 지나 책상 앞에 앉았다. 항상 많은 사람들이 공부했다. 대부분 내 또래였다. 시간들이, 젊음이 속절없이 책과 책 사이에서 아스라졌다. 

책상은 무덤 같았다 이곳을 너무 나가고 싶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니체는 이야기했다.

 이 문구에서 내가 가장 섬뜩했던 사실은 고통을 이겨내야 강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져서 무너지는(혹은 죽거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취업이라는 고통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같이 공부하고 시험 보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왜 이걸 당연하게 감내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기지만 또 누군가는 무너질 테고, 

아마 다시 일어날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어디에서 본 시처럼     


나, 그들을 만나 불행했다.

그리고 그 불행으로 그 시절을 견뎠다.

<깊은 슬픔, 신경숙>     


취업은 대부분 불합격만 하는 불행한 시절이다. 정말 대부분 생각대로 안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 불행을 받아들이며 그 시절을 버티려고 했다. 역설적으로 불행이 너무 크게 느껴지자, 소소한 행복에도 눈물 겨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매번 같은 곳에서 어머니가 사주시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걀 샌드위치에 행복을 느끼며 이 취준 순간을 과연 그리워할까 생각했다. 한 달에 한번 보던 여자 친구도, 연락하기 무서워지던 친구들도, 가족들과 걷던 밤 산책길도, 일어날 시간을 정하지 않은 채 핸드폰 게임을 켜놓은 채 자던 밤들이 이제는 정말 그립다.

      

그래도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준비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전부 떨어 뜨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싫었고 그렇게 증오하며 준비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웃으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싫었고, 혼자 밥을 먹는 나 자신이 속상했다. 말 그대로 허겁지겁 아무 말도 없이 밥만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이제 들어가서 무엇 무엇을 해야지, 이렇게 해도 될까라고 생각하며 속이 상했다.

혼자 속으로 곯았다.

     

그렇게 곯았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그냥 그 상처가 있는채로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한다.

그리고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준 상처도 있다는걸 절실히 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여러 곳에서 합격했으니까. 그게 나쁘다는걸 알고 공감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좋다.

그리고 응원하지 않고 조용히 견디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론, 그래도 공항을 선택해서 일하는 나 자신이 너무 좋고 멋지다. 

사회에 한 획은 그을 수 없을지라도, 

다시한번 반짝일 수 있는 것 같아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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