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상냥은 필요하다.
2021년 상반기, 내 마음을 강타한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떤 다정은 깜깜하기도 하구나.’
나는 판타지를 상당 부분 걷어낸 [깜깜한 다정] 비슷한 것을 정신과 상담실에서 경험했다.
눈물을 참아가며 늘어놓는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마스크에 절반이 가려진 얼굴의 의사 선생님은 딱딱한 표정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
라고 짧게 대답했다. 환자 저마다 간절하고 애타는 사연을 매일 듣는 일이 직업인 사람의 어쩌면 기계적인 대답. 어떤 사람은 서운하거나 섭섭하게 느낄법한 짧은 대답이 내게는 꽤나 괜찮은 위로였다.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어떤 것이 갑자기 별 것 아니게 작아지는 무심함.
그래, 가끔 우리는 무심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에 마음을 내어주면 오히려 무겁다.
고민은 끌어안고 있을수록 나를 잡아먹는다.
작은 마음으로 가볍게 사는 일상과 뜨겁게 마음을 내어주는 것.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 균형을 잘 잡는 건 어렵지만, 그게 중요한 일이겠지.
아무튼 지금 나에게는 가벼운 무심이 필요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하는 조금은 건조한 마음으로.
당분간은 머리는 비우고 마음은 지키며 산뜻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