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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채집자 Sep 22. 2015

세상의 포근함이 날마다 그대에게

나무집 / 마리예 톨만, 로날트 톨만

나는 땅 끝까지 가 보았네

물이 있는 곳 끝까지도 가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 가 보았네

산 끝까지도 가 보았네

하지만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인디언 나바호 족 노래 중에서


  

하늘이 꿈꾸듯 열려 있는 넓고 푸른 바다, 그 위에 고래를 타고 잔잔한 해수면을 유영하는 하얀 곰 한 마리. 커다란 판형의 표지 그림 속 고래 등 위에 띄워진 제목 또한 휴식의 그늘을 꿈꾸게 하는 그림책. 하늘과 바다뿐인 표지의 풍경 속에서 담백하면서도 단순한 ‘나무집’이라는 제목은 이내 책장을 들추고픈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고.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던 곰이 발견한 것은 빗속에서 이내 잠길 듯한 물 위의 한 그루 나무집. 비가 그치고 말없이 넉넉한 쉼터가 되어 준 그곳에서 편안히 배를 깔고 누운 곰은 턱을 괴고 바다를 바라본다.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나무집을 향해 가만히 실어온 것은 또 다른 곰을 태운 작은 쪽배 하나.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마치 생명이 잉태되는 자궁처럼 부드러움과 포근함을 연상시키는 공간이기도 한 곳. 바닷속 포유류인 고래를 타고 오는 이야기의 시작이나, 내리치는 빗발에도 고요함과 평온함을 간직했던 수면, 그 속에서 편안한 곰의 표정에서도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자연에 대한 상징적 은유를 담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만난 두 마리의 곰은 이제 바다의 품에서 나무의 품으로 옮겨간다. 나무집은,  생명을 생장시키는 보다 넓은 대자연의 품을 보여준다. 대지를 물들이는 노을빛일까, 에너지 가득한 태양의 열기일까. 어느 순간, 나무집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가득. 거대한 무리를 이룬 홍학부터 시작해 온갖 동물들이 모여드는 그림들이 이어지면서 나무집은 어느 순간 시적인 우화의 공간이 되어준다.  


걷고, 기어 다니고, 날고, 헤엄치고,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대지의 모든 생명체들... 그들의 몸짓과 표정들 속에서 많은 이야기와 느낌들이 피어오른다. 작지만 둘을 위한 소박한 공간으로 보였던 나무집은 이제 품어도 품어도 좁음이 없는, 자연의 편안하고 살가운 품을 보여준다. 그 한없는 넉넉함이라니. 찾아온 이들에게 일일이 눈 맞추며 맞이하는 곰들도, 나무 아래에서 나무 위에서 나뭇가지 사이사이에서, 자기의 자리를 틀고 맘껏 쉬어가는 동물들도 서로를 마주하는 다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나무집에서의 휴식을 즐기는 곳.



나무집은 아버지와 딸이 함께하는 손작업으로 완성한 에칭 판화기법의 그림책이다. 자유롭고 중첩된 라인들로 표현한 나무집의 풍경들은 연두에서 노랑으로, 주황에서 분홍으로, 색색의 활기와 에너지의 감정을 담은 다채로운 빛깔들이 배경을 물들이면서 제각기 신비로운 표정을 달리한다. 날씨와 공기, 생명이 숨 쉬는 대지와 하늘, 흐르는 계절, 그리고 낮과 밤… 그 속에서 나무집은 ‘비로 만든 집, 노을로 만든 집, 새벽으로 만든 집, 안개로 만든 집, 달빛으로 만든 집’이 된다.  


언제나 말이 없이 그 자리인 나무집은 한장한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속에 담긴 빛깔과 움직임, 소리들이 오감을 자극한다. 단순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설계된 나무집의 면면, 생물 도감으로 활용해도 손색없을 세밀하게 그려진 동물의 다양한 몸짓들과 관계 나누기를 보면서, 저마다 자기만의 느낌과 상상으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자기만의 그림책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나무가 제 안의 것들을 품어 키워내기 위해 생명의 수액을 빨아올리기라도 한 것처럼,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해수면이 소리 없이 줄어들어 사라져버린 나무집의 공간은, 이제 바다가 아닌 육지의 해변 같기도 하고 평원 같기도 하다. 아니, 마치 시공을 초월한 공중정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늘로 자라 오르는 나무라는 또 다른 어머니의 품은 너와 나를 구분 짓고 경계지음이 아닌 모두가 공유하는 조화로운 장소, 모든 생명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품을 보여주는 것 같다.


존중한다는 것, 함께 공존한다는 것은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대해 가치를 발견하고 느낌을 담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누군가의, 또는 무언가의 행복을 생각하고, 사려 깊게 대하는 것. 그것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말이 없는 생물이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때, 평화로움과 행복감이 깃든다는 것을 이 글 없는 그림책이 이야기해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자연의 친구들이 쉬었다 간 자리. 달빛 아래 텅 빈 충만을 즐기는 두 마리의 곰이  걸터앉은 지붕 밑, 여전히 따뜻하게 불밝힌 나무집의 풍경에서, ‘평화롭게 행동하고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생각하는 힘’을 키워 내는 아이들의 맑음과 순수를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거나 저녁에 잠들기 전 내 주위의 것들이 우리에게 준 많은 좋은 것들을 떠올려 보는 자연성을 회복하는 우리네의 삶, 그림에 스며있는 보이지 않는 침묵의 언어가 한 줌의 맑고 신선한 바람처럼 이 책을 보는 그대의 마음을 일깨우고, 순수함 가득한 아이들의 영혼도 풍요롭게 살지우기를.





그림책 꺼내들고 떠나는 여행  



그저 동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어릴적 TV로 보던 만화 속 주인공들의 나무집을 보며 동경하며 부러워 하곤 했는데,  우연히 인간극장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트리하우스를 짓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게되면서 머릿 속에만 그리고 있던 나무집에 대한 열망이 다시 꿈틀. 다섯아이를 낳아 키우며 전북 김제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 아빠 미즈노씨의 그림같은 트리하우스 이야기는 그렇게 TV로도 잡지로도 소개 된 모양이다. 그리고 국내에 번역본으로 출간된 트리하우스에 관한 책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내 손에 쥔 책을 펼쳐들고 사진으로 담겨진 '나무 위의 집'들을 보았을 때의 그 설레임과 경이로움이란.


트리 하우스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트리 하우스에 멈춰 서서 바람을 느끼고, 숲의 향기를 맡고,
나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일상의 번거로운 일로부터 해방되고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자 사소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 주의 주도인 '자이아푸라'에 사는 코로와이족의 나무 위의 집은

고온 다습한 열대 기후의 울창한 밀림 속에서 벌레와 동물들, 그리고 적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생존의 수단으로 짓기 시작한 집.


도심의 현대인들에게는 생존이기보단 삶의 여유와 낭만을 꿈꾸게 하는 곳.

바람처럼 새처럼 자유롭게 살고픈 꿈을 꾸게 하는 공간.

일본, 유럽, 아메리카...  책 속에 담겨진 세계 곳곳, 지상 위에 구현된 나무 위의 집들.

온라인 지도 위에 책에 적힌 나무집들의 주소를 찍어본다.

마음은 이미 너른 들판 위에,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 집들을 마주하고 있다.

 곳에 가고 싶은,

그런 작은 숲 속의 집 하나 일궈보고 싶은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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