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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양 Jul 31. 2024

이 집으로 말하자면...

이런 사연이 있다고요.

제주도는 집을 임대할 때 년세를 내는 경우가 많다.

일 년 치의 임대료를 한꺼번에 내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제주 이주 첫 해  작은 빌라에서 1년 년세를 살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니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야 할 경우도 생각하고 있어야 했다. 1년 후 상황을 보고 집문제를 다시 고민해 보자 했고 1년은 얼렁뚱땅 금방 지나 버렸다. 1년 후 우리는 다시 내야 하는 년세가 아까워졌다. 

"집을 사야 하나?

그럼 육지의 집을 팔아야 하는데...

지집은 그대로 두고 싶은데...

아이들이 자라면 도시에서 살고 싶을 텐데"...

하나를 얻기 위해서 하나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하지만 양손에 하나씩  2개를 쥐고 싶 욕심이었다. 그러던 중 동네골목 안쪽에 이상한 건축물이 보였다.

"저긴 뭐 하는 곳이지? 카페인가?

카페라기엔 골목 안이라  구석진 곳 같은데...

다음에 구경 가보자"...

그랬던 곳인데 인터넷 부동산 매물을 찾다 보니 그곳이 매로 나와 있었다.

우리는 다시 년세를 내고 싶지 않았고,

우리가 준비한 제주생활 여유자금에서 조금 더 대출을 받으면 큰 무리 없이 매매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그날 집을 보자마자 계약을 했다.

 그 집이 우리에게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독특한 형태로 공사가 중단된 어중간한 심난함 그 자체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오데식 돔 하우스. 쉽게 설명하자면 이글루 형태의 집이었다. 104평 대지에 16평형 돔 하우스.

가정집이라기엔 평수도 작은데 형태도 돔이 너무나 비효율적인 구조였다. 심지어 완성이 된 것도 아니라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라 주변에선 그냥 밀어 버리고 다시 건물을 올리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건물 올리는 게 한 두 푼인가?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년세 내느니 조금 불편해도 대충 마무리 공사해서 살아보자.

그런 마음으로 집을 샀고 셀프로 공사를 했다.

그런데 공사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동네할머니들이 "근데 그 녀석이 너무 불쌍하고, 너무 짠하다"라고...  지날 때마다  안타까워하셨다.

계약을 하면서 안 사실인즉....

전 주인은 30대 후반의 로맨틱한 노총각이었다.

노가다 생활을 하며 살아가던 육지살이가 고달파 홀로 제주로 왔고, 제주에서 마음 맞는 아가씨를 만나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다.

하고 건축비가 저렴한 조립주택 돔하우스를 지어 완성이 되면 그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게 노총각의 꿈이고 계획이었다. 육지 노가다 친구들을 불러 조립식 주택(돔하우스)을 금방 완성하리라. 그러면 늦은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제주에 자리를 잡겠지. 하지만 인생 쉽지 않다.

제주의 날씨는 공사를 계속 늦추었고, 평범치 않은 집이라 육지에서 건축자재들을 옮겨 오느라 자재비도 계획보다 훨씬 높아졌다. 육지의 공사현장만 생각했던 집 짓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속도가 나지 않으면서 공사비가 계속 불어났다. 그래서 결국 사채까지 빌리게 되었고 급매로 집을 낼 때쯤엔 사채업자들의 죽이니 살리니 하는 협박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기 위해 집을 포기하고 급매로 팔고 제주를 떠나셨다. 그런데 그 노총각아저씨의 성격이 순하고 동네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공사하는 동안 막걸리랑 과일을 사들고 주변 어르신들께 종종 인사를 다니셨던 모양이다. 어느새 정든 살갑던 총각이 좋지 않게  제주를 떠나 버렸으니 할머니들은 우리 집을 지날 때마다 우리랑 상관없이 그 녀석이 짠해서 어쩌냐고.... 애잔해하셨다. 난 그때마다 착한 세입자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욕심 많은 집주인처럼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 노총각아저씨가 떠나고 제주는 본격적인 붐이 일고 땅값은 하루가 달리 올라갔다. 그래서 좋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너무 뒤늦게 육지아파트를 팔고 최고점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그 후 육지아파트는 팔자마자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2.5배쯤 올라서 한동안 배가 아팠다. 그 좁은 돔하우스에서 복작복작  정신없이 6년이나 살았다. 수납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고 어린아이들 장난감부터 여러 살림들이 늘어나면서 피난민수용소 같던 돔하우스와 이별하였다. 6년 동안 제주부동산은 최고점이 되었고 그때서야 아이들과 살기 위한 집을 구하느라 육지집을 팔고 제주의 작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했다. 이런 멍청이들....과거의 나 똥멍청이.




돔하우스는  축구공집, 우주선집, 거북이집으로 불리며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작은 민박집이 되었다.... 그리고 제일 많이 듣는 이름은 스펀지밥의 파인애플집이다. 색깔은 다르지만 아이들의 눈이란.....

스펀지밥집에 또 올게요....

후기를 남기고 가는 아이들이 많다.



아저씨는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려나?

그 아가씨한테 장가는 가서 아들딸은 낳았을까?

아저씨에게 제주는 좋은 곳일까? 나쁜 곳일까?

한동안 아저씨를 애잔해하던 할머니들의 사랑을 알고 계실까?


우리 집은 말이지 이런 사연이 있다고...

재밌지? 재미없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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