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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Sep 02. 2020

그는 프로였다.

대학 4학년 여름방학, 인테리어 사무실로 실습을 나갔다. 졸업하기 전 진로에 따른 실습기간을 갖게 되는데 통상적으로 방학을 활용하게 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실습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때도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며 디스플레이어가 되기로 했다. 그때 한참 인기를 끌었던 영화 '그대 안의 블루' 탓일 수도 있다. 어쩌면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마네킨'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졸업을 앞두고 4학년 2학기, 디스플레이 회사에서 수습 과정을 거쳤다.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고된 직업이었다. 낮에는 디자인 한 소품을 제작하고 밤에는 쇼윈도 안에 들어가 설치 작업을 했기 때문에 명동의 한 복판 쇼윈도 안에서 잠이 들기도 여러 번. 그렇게 밤낮없이 일한 대가로 받은 월급은 30만 원이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이런 나에게 대학 동기들과 선배들은 "무슨 일을 해?"라고 묻는 대신 "얼마 받아?"라고 물으며 받는 금액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질문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받았던 금액이 맘에 들지는 않았다. 맘에 들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난 일을 배우는 단계였고 학원비를 내는 대신 돈을 받고 일한다고 생각했기에 금액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지금은 일을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난 배우면서 돈을 받는 거야. 얼마나 좋아?"  훗날 동생은 내가 이렇게 말을 했을 때 무척이나 멋있게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생활이 오래가진 못했다. 급여 때문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온 실장이라는 사람은 일만 시작되면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를 벗어났으니, 도저히 꼴불견이라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래도 그 수습기간 덕분에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일을 했고, 서울이 너무나 지저분하게 느껴질 즈음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에 공채 1기로 입사를 했다. 


나의 첫 업무는 공원 연출. 과학공원으로의 재개장을 앞두고 있던 터라 16만 평의 공원을 누비며 일을 즐겼다. 800명이 넘는 직원 중 대표이사 표창도 받았으니 열심히 일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원이 개장을 하고 3년이 다 되어가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편하게 다닐 수는 있었지만 재미가 없어지니 더 이상 다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난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연봉 계약으로 따박따박 정해진 월급에 보너스까지 받는 생활을 뒤로한 채, 프리랜서로의 시작은 자유는 있지만 혼자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중 일에 대한 대가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받고 싶다고 마냥 높게 책정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내 일의 경우, 견적을 내고 계약을 하면 선수금 50%를 받고 진행하게 되는데 일을 하다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많거나 어려워 '아~ 견적을 좀 더 올릴걸~~~' 뒤늦은 후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어차피 내가 낸 견적이기에 두말은 없다. 다만 다음엔 좀 더 신중하게 견적을 내면 되는 일이다. 좀 더 받겠다고 일하는 중간에 비용 운운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일을 하는 자세가 어긋난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클라이언트에 의해 일이 추가되는 경우엔 다르다. 


남편도 나와 다르지 않다. 고작 몇천 원 하는 책이지만 책값은 시기에 따라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중고책의 경우 정가보다 훨씬 비싼 책이 더러 있다.) 책을 매입하고 시세에 따라 책값을 매긴 후 책꽂이에 진열하게 되는데, 이 책이 선택되어 판매될 때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는 아쉽지만 매긴 금액으로 판매한다. 반대로 시세가 내려간 것을 확인 한 경우엔? 아깝지만 내려 받는다. 


몇만 권의 책을 매번 다시 확인하며 책값을 정할 수는 없다. 책이 자리에 꽂히기 전 매겨지는 가격이 중고책 값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값을 정하지 않고 표기만 해두는 경우도 있는데, 책방 주인의 안목으로 값이 오를 수 있는 책에 따로 표시를 해 두어 그 책이 손님에 의해 선택되면 그때 다시 시세를 찾아보고 값을 정하기도 한다. 이렇듯 일반적으로는 한 번 매긴 금액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는데 원칙이다.(물론 어느 날 갑자기 절판되어 시세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면  손님께 양해를 구하고 판매를 보류시키기도 한다.)


지난 6월 중순, 43일간의 공사가 진행되었다. 서점의 창고 공사다. 1940년대의 창고 건물은 노후되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지반이 약해진 탓에 바닥은 일부 가라앉았고 때문에 기둥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해마다 표시를 했던 남편은 1년 전 보다 얼마만큼 벌어졌는지 확인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사 비용 마련이 난감했기에 셀프로 기둥 보강을 하고 고정용 쇠파이프를 구매해 보강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불안은 잠재울 수는 없었다.

(공사를 진행하며 알게 된 사실은, 옆 건물을 지을 때 우리 건물과 간격을 두고 지었는데 배수구를 만들지 않고 건물을 지은 탓에 수년간 빗물이 서점 창고의 바닥으로 흘러들어 흙이 빠져 지반을 약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난 은행을 찾아 대출을 받았고 공사해야 할 것을 리스트로 만들어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믿을만한 공사 업체를 찾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우리에겐 큰 결심을 한,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가 도저히 미루면 안 되겠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업체 3곳에서 견적을 받았다. 견적 금액은 1~2백만 원의 차이는 있었지만 거기서 거기. 결국 우린 최종 결정을 내렸다.(견적 금액으로 제일 높은 곳이다.) 다 해주겠다고 나서는 그곳은 서점과도 멀지 않은 곳이라 일하기에도 수월할 것 같았다. 우리의 요구는 H빔으로 기둥 보강, 3면 조적, 정화조 설치, 바닥 보강이다. 사장은 거기에 더해 천정을 페인팅해 주겠다고, 책장을 만들어 주겠다고, 사무실 공간을 따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믿음을 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던 그는 극한직업에 출연했던 영상을 보여주며, 영업에는 지장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요즘은 공사하는 것 볼 필요도 없다고, 계약한 날짜에 차질 없이 진행될 거라며 돌이켜보니 갖다 붙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갖다 붙이며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아니에요.. 책장은 제가 만들게요~" 꼼꼼한 남편은 인테리어 업자들이 만드는 책장이 맘에 들지 않을게 뻔하다며 사양을 했고 난 수고로움을 덜겠다는 생각으로 나무는 추가로 구매해 주기로 하고 맡기자고 하였다. 하지만 계약금을 보내는 순간 갑과 을은 완전히 뒤바뀌었고 약속은 보이지도 않았다. 


담당 직원들이 다 있으니 모두 해결 가능하다는 업체 사장은 첫날부터 전화를 해야 공사 시간과 날짜를 확인할 수 있었고, 며칠 동안 말없이 오지 않거나 큰 공사를 현장 소장 격인 한 사람이 와서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전화를 걸어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되지 않냐고 하면, 화를 낸다고 되레 큰소리다. 그렇게 말도 못 하게 만들었다. 


서점 영업은? 당연히 단 하루도 할 수 없었다. 서점에서 진행하는 약속된 수업 또한 할 수 없었다. 급기야 '그래 끝내기만 해라.......' 주문을 외웠다. 중간중간 돈을 달라는 그들 앞에서 일정 확인을 받고 계약서에 다시 사인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무용지물. 사장은 얼굴도 못 본 채 일하는 사람 혼자 와서는 돈돈돈....... 밑졌다며 계속 돈타령이다.(계약서보다 항상 먼저 지불했는데도 돈돈돈.......)





더디게 진행되던 공사는 약속된 날짜를 훌쩍 넘겨 드디어 조적(벽돌로 담쌓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이전의 작업과는 대조를 이루며 마치 예술가를 방불케 했던 노년의 조적공은 한 장씩 벽돌을 쌓아 올렸다. 아름다운 조적도 잠시, 현장 소장은 또 돈을 요구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달라고 할 때마다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적공에게는 지불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장이 쉬는 일요일. 남편과 열심히 청소를 하는데 조적공의 대표님이 서점에 오셔서는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가 들었던 비용과는 다른 말씀을 하시며 "하도 밑진다고 해서 내가 비용을 낮춰 받기로 했는데, 이젠 전화도 받지 않는다."며, "견적을 내고 계약을 했으면 말없이 해야지, 밑진다고 징징징징~  견적을 높게 책정해서 많이 남으면 다시 되돌려줄 거야?" 그렇다. 맞는 말이다. 많이 남은들 우리에게 돌려줬을까?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그의 작업처럼 그는 프로였다. 작업 과정은 그 사람을 보여주었다.


"전화받으실 상황이 아닌가 봐요. 그런 분 아니세요~" 역성을 들었다. 현장 소장은 정말 노년의 조적공이 생각하시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사 시작 43일째 되던 날. 

어정쩡한 마감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래 그건 당신의 능력이, 역량이 그것밖에 안되는 거니 우리가 포기하겠소'라고 생각하며 남은 것만 해주기를 바랐다. 깜빡하고 자재를 사 오지 못했으니 다음 주 월요일에 오겠다 약속을 하며 잔금을 모두 달란다. 그때 남은 잔금은 200만 원.


"소장님 저희가 뭐라도 갖고 있어야지요"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그는 말했다. "저 못 믿으세요? 이제 다 끝났어요. 월요일에 남은 거 설치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잔금 주세요." 남편과 나는 "어차피 드릴 돈이니 기분 좋게 드리자!"며 입금을 해 드렸고 그 후로 그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오겠다던 월요일은 화요일이 되었고 화요일은 금요일이 되다가 문자에도 연락이 없었다. 그즈음 하자가 발생했다. 화장실에 물이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공사가 잘못된 거면 정말 큰일이다.)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기를 1년 안에 발생한 하자는 보수해 주는 것이 원칙인데 2주나 지났을까? 그런데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공사가 잘못 된 되었거나, 변기를 앉히면서 변기 속으로 넣었던 백시멘트 탓이지 싶다. 차라리 후자이길 바란다)


참다못해 계약한 사장에게 전화를 했고 사람을 보내주겠다던 그곳에선 메아리로도 들리지 않는다. 결국 난 계약 당시 초대되었던 네이버 밴드에 글을 남겼다. "잔금을 치른 지 3주가 되었네요. 하자와 마무리는 언제 해 주실 건가요?" 

글이 삭제되었다. 내가 버튼을 잘못 눌렀나 싶어 다시 글을 올렸다. 또 삭제되었다. 혹시나 싶어 복사해 둔 글을 세 번째 올렸을 때 그들은 나를 강퇴시켰다. 할 줄도 모르는 욕이 머릿속에 차오른다.


난 운이 좋은 사람이니 좋은 업체일 거야. 괜찮은 사람들일 거야. 


어제는 손님이 들어오셔서는 정리하는 공간을 보며 공사했는지 물었고, 업체를 소개해 달라고 하신다. 이사할 집을 대대적으로 손보려는 데 마땅한 업체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소개해 드리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곳이 못되어 한숨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일은 이렇게 연결되기 마련인데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어가려고 그 모양인지 참으로 한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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