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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Dec 20. 2020

스미스가 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남편

고양이를 싫어하는 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아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남편

고양이 키우기를 반대하는 나



 고양이를 싫어하니 강아지를 키울까 제안하는 아이에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어릴 적 강아지를 키웠던 나는 정 떼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안다. 아프기라도 하는 날에는 큰 비용이 드는 것을 보았기에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에겐 그런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자라는 아이는 여전히 고양이를 좋아하고 길고양이에게 간식을 사다 주며 제 용돈을 쓰기 시작했다. 고양이 장난감을 사기도 하고 공동주택에 살면서 급식처를 만들겠다고, 간이집을 만들겠다고 했다. 고양이를 싫어하던 나는 '좋아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슬슬 유기묘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출발은 외동딸이다.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하며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는 온라인에서는 좀 다른 듯했다. 그림 모임을 만들어 대장 노릇을 했다. 그것을 알게 된 나는 왜 그러면 안되는지를 설명했고 가족회의 끝에 2주에 하루는 서점 문을 닫고 아이와 온전히 노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는 아이 몰래 유기묘를 검색했다. 1년 전 유기묘 입양을 고민했다가 포기했었는데 이번엔 좀 더 진지한 내 모습에 남편은 대찬성! 하지만 과연 평생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경제적인 면도 감당할 수 있을까? 아프면 어쩌지? 정말 걱정은 점점 커지기만 할 뿐 가라앉힐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이한테도 좋다는데... '예쁜 아가 냥이를 데려다 키우면서 정 붙이자' 싶었는데 사정이 생겨 분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희고 예뻤다. 2살 되었단다. 1인 가족으로 어렵게 이사 할 집을 찾았는데 집주인이 동물은 절대로 안된다고 했단다.(그런 곳도 있단다.) 부모님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맡길 수가 없단다. 중성화도 되어있는 데다가 순하고 건강하다니 용기를 내어 댓글을 달았다. 분양 전이라 하기에 좀 더 긴 질문을 했고 몇 번의 문자와 통화를 했다. 하지만 성묘를 입양해서 키울 수 있을까? 수십 번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매일매일 올라오는 분양글을 보았다. 두 달 된 고양이, 5달 된 고양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올라오는 글을 보며 어떤 고양이를 입양할까 가족회의를 했다. 


 남편은 3달 ~ 5달 정도의 고양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묘는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라고, 곁을 내주지 않으면 어쩌냐고, 데려오면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어렵지 않겠냐고. 하지만 아이는 처음 말을 걸었던 2살짜리 고양이에 이미 마음을 정했는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엉엉 울고 잠들기를 여러 차례. 


 그럼 난? 사실 난 잘 모르겠다. 갑자기 우리의 공간에 커다란 흰 동물이 걸어 다닌다 생각하니 후... 괜히 내가 결정을 해서 이모양을 만들었나 싶기도 하고 걱정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고양이를 키우면 여행도 갈 수 없다며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면서도 내게 걱정스러운 말을 하는 친구는 할 일도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우는 이유는? 그런 것들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행복을 가져다준단다. 물론 아이들에게도 좋단다. 분명.


 이틀에 걸쳐 고양이 키우는 집을 방문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성묘의 크기는 과연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해보고 그리고 결정했다. 키우자! 아이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 "네가 할 책임이 늘어나는 거야~"


 고양이가 정할 공간을 가늠해보며 비우고 청소하고 약속시간을 카운트. 드디어 스미스가 왔다. 2살 된 고양이의 이름이 스미스란다. 정든 가족과의 헤어짐에 괜히 내가 울컥해서 눈물 찔끔. 낯선 공간에서 떨고 있는 그가 너무 애처롭지만 기다려야한다니 그럴 수밖에. 대신 밤엔 여기저기 탐색을 하며 계단 위에도 앉았다가 욕실도 들어갔다가 밥도 조금 먹었다. 


모쪼록 빨리 적응해서 활보하기를.......

고양이는 부르는 소리에 반응할 뿐 이름을 모른다니 조만간 이름이 바뀔 수 있다.




입양 1일 차. (2020.12.19.   11:30)

2년 3개월 된 터키시 앙고라 

제대로 못 봐서 모르겠지만 엄청 큼. 

계단 아래 공간에 두툼한 방석과 자기가 가져온 담요를 깔아주고 보일러 가동은 물론 따뜻한 물주머니와 펫용 난로 틀어줌. 가만히 있으니 추울까 봐~

밤이 되자 탐색 시작.

계단을 오르내리고 욕실에 들어가고 어슬렁어슬렁 낮은 포복자세.

사료 조금 먹음

(계단에 털이 그냥~~~  아.. 시작이구나... ^^;;;)


입양 2일 차.(2020.12.20)

날이 밝자 냉장고 뒤로 숨어버림. 

공간을 넓혀줘야 하나? 그러다가 냉장고 뒤를 자기 공간으로 정하면 어쩌지? 그건 아닌 것 같아~

인터넷 검색 후 냉장고 앞에 간식 가져다 놨는데 제발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

인기척을 내지 말라고 해서 아이와 난 속삭이듯 말하고

"우리..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거야?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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