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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Sep 02. 2021

내 주제가 어때서

1990년대 초반, 전산쪽 일을 담당하던 직장동료는 말했다. 앞으로는 개인 전화기를 갖고 다닐거라고, 휴대전화가 생길거라고 했다. 삐삐(호출기)를 갖고 다니던 시절, 집전화가 있고 공중 전화가 거리마다 있던 그 시절에 했던 이야기다. 편하긴 하겠네. 근데 그게 왜 필요하지? 같이 있던 친구들은 굳이~ 라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 전화는 등장했고 나도 질세라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휴대전화의 시작은 시티폰이다. 공중전화 부스 근처에 있어야 잘 터지는(걸리는) 커다란 시티폰을 청바지 뒷주머니에 쑤욱 넣고 다녔는데 내 기억엔 TV광고를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시티폰 이후 걸면 걸린다는 광고로 등장한 PCS는 조금 작아진 형태를 취하더니 누가 더 작게 만드나 경쟁이라도 하듯이 휴대전화는 자꾸만 작아졌다. 급기야 탁! 접으면 너무 작아 귀와 입 사이 그 어디쯤에 있어서 과연 통화가 되기는 할까? 싶은 것들로 웃음까지 자아냈었다.  


그렇게 점점 작아지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듯한 형태는 한계에 다다르자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던 디자인은 이때부터다. 형태가 커지면서 마음에드는 디자인이 속속 출시되었는데 디자인을 중요시 하는 나는 그것들을 소유하고자 기다렸다. 출시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가격이 낮아지기를 기다린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출시된 지 1년정도 지나면 가격이 급락했고 심지어 0원폰도 있었다.


소유했던 휴대폰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디자인은 삼성 터닝폰과 엘지 샤인폰이다. 이후 스마트폰으로 교체할때도 다르지 않아  가격이 낮아지기를 기다렸다가 삼성 갤럭시 줌2와 HTC의 센세이션 XL, 그리고 블랙베리 Q5를 소유했었다. 이것들은 그저 네모난 디자인에서 나름의 변화를 보이며 스마트폰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후 별다른 디자인의 휴대전화가 없었기에 2년마나 바꾸는 동생의 전화를 물려받아 사용했다. 2년이면 버려질 그것을 난 2년이상 더 사용해 휴대전화의 수명을 연장했다.





기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기능이 크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휴대전화가 아닌가. 디자인을 중요시여기는 내 기준으로 보면 다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그러게, 거기서 거기인 디자인의 휴대폰을 왜 2년마다 바꾸는건지 납득이 안됐다. 2년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동생에게 물었다.


"아직 멀쩡하고 바꾸려는 휴대폰도 다를것이 없는데 뭐하러 바꾸는거야?" 동생의 대답은 놀랍고 단순했다.

"지겨워서~"

기능의 차이가 조금은 있겠지만 그것때문에 백만원 가까이 주고 산, 아직은 멀쩡한 전화기를 바꾼다는 건 '물건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대기업을 먹여살릴 작정이라면 모를까 글쎄다. 다행히 동생은 나의 설득에 넘어갔고 5만원 이상 나오던 통신비가 1만원대로 내려갔다며 만족하며 사용중이다.


사실 동생이 휴대폰을 교체하면 난 땡큐다. 나한테는그나마 성능 좋은 휴대폰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니까. 하지만 수명을 늘리기로 한 동생의 바른 결정 덕분에 난 휴대폰을 새로 장만해야 했다. 올해부터 휴대폰이 자주 먹통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주위에서는 빨리 휴대폰을 바꾸라며 성화였다. 알뜰폰 통신사를 사용하고 있는 난 이용하는 통신사에서 판매하는 휴대폰을 찾아봤지만 마음에 닿는 휴대폰이 없었다. 모두 다 똑같은 네모난 모양에 이끌림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휴대폰을 알아보던 중 '이거다!' 싶은 휴대폰을 발견했다.



나의 선택은 삼성닷컴 단독컬러



그것은 바로 Z플립.

드라마를 보던 중 배우가 갖고있는 그것을 본 순간 넘 예뻐서 고싶었다. 하지만 비쌀테니 나중에.

또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휴대폰 가격이 낮아지지 않는다나?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는 엘지 G6. 한때 신봉선 폰으로 유명했던 튼튼한 전화기로 슬림하고 괜찮다. 하지만 비슷한 디자인으로는 바꾸고싶지 않았으니 그저 Z플립만 검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Z플립 3가 출시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맘에들면 '사!'라며, 자동차(크라이슬러 피티크루저 - 매우 가조싶었지만 포기) 대신이라며 금일과 함께 '사전예약'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 기간에 구매하면 사은품도 준다는 말과 함께.


"미쳤어~ 백만원이 넘어. 작은 휴대폰을 내가 모시고 다닐일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꾸만 찾아보게 되었다. 백만원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백만원! 없다고 생각하고 구매해도 내 생활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것이다. 다만 '내가 고가의 휴대폰을 갖고다닐 주제가 될까? 내게 그것이 과연 필요할까?'

조금 깊이 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사도 괜찮. 열심히 일했고 그정도면 사치부리는 거 아니. 한번쯤은 괜찮지 않겠어?"


두둥~! 드디어 사전예약 당일 아침.

전날 열심히 찾아본 결과 라이브 방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침준비고 뭐고 고정자세로 그 방송을 시청했다. 살까 말까 머릿속에선 회전 중. 방송이 끝나고도 결정을 못해 여러가지를 놓쳤다.


그리고 다음날, 더이상 버티다간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결제완료! 내 생애 이런일이 있을줄이야~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 주제가 어때서,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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