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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Sep 08. 2021

보리차 한 병이 아이를 울렸다.


무더웠던 지난여름, 아직은 더위를 참을 만했던 7월 중순. 입양한 고양이가 걱정되어 작은 에어컨을 주문 해 놓고 설치되기를 기다리는 주말이었다.


오후 5시. 실내 온도가 내려가길 기대해보지만, 기운 해가 남서향으로 난 커다란 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까닭에 온도는 요지부동이다. 밥도 해 먹기 싫은 더위, 땀으로 끈끈해진 목에 손수건 한 장을 두른 채 가스불을 켜 놓고 보리차를 끓였다. 정수기 버튼만 누르면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싱크대 안쪽에 사 둔 보리가 있었다.

 

'뭐 그까짓 것 갖고 그래!'라고 하지 않았다.

"엄마가 맛있게 끓여줄게~" 라고 말했다. 이어 얼른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불에 올리고 보리를 담은 차 망을  냄비 속에 넣었다. '얼른 끓어라.' 1리터 정도는 금방 끓을 텐데 더디게 느껴지는 건 눈물을 보인 내 아이 때문일 것이다.


그날은 오랜만에 딸아이의 친구가 놀러 왔다. 코로나로 자주 만나지 못해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시원한 메밀국수와 만두를 포장 해 와서 점심으로 먹고는 방해받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쪼르르 2층으로 올라갔다. 눈치있는 엄마인 나는 1층 실링팬 아래에서 최대한 꼼짝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친구 만나 즐거울 아이 생각에 마음이 좋았다. 조용한 아이들이라 대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문 열어달라는 고양이 소리에  반응하는 아이들의 소리만 가끔 들릴 뿐.


오후 5시 무렵 아이의 친구는 집으로 갔다. 그런데 내 아이의 입모양이 이상했다. 움찔움찔,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모양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눈물을 보였다. 이유가 궁금해 물으니 아이는 대답 대신 방 안에 굴러다니는 보리차 병을 가리켰다.


"저게 왜?"


친구가 보리차 2병을 가지고 왔단다.


"근데."


그런데 그 2병을 다 마시고 갔단다.


"너 주려고 한 게 아니었나 보지~"


마실 거냐 물어서 마신다고 했단다.

그런데 한 병을 다 마시더니 또 다른 한 병을 아무 알 없이 그냥 다 마시더란다.


내 딸의 입장이 아니라 이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나한테 준 거니까 내 거잖아,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왜 마셔!'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말했다.

"너는 그러지 마~! 그 아이가 잘못한 거야."


무더운 날 보리차 진하게 끓여서 얼음 잔뜩 넣어줬다.


아....... 아이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

만약 내 아이가 "나한테 준 거니까 내 거잖아,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왜 마셔!"

라고 말하는 아이라면 좀 덜 답답할까?

잘 모르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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