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는 지금 II
엄마는 치매환자가 되었다.
경도인지장애 등급을 받으신 후 2년이 지났고 약은 드시지 않는다. 관련된 약이 모두 몸에 받지 않는다는 가장 큰 이유로 드시지 못하는 거다. ‘그래도 약을 드셔야 한다.’는 조언을 듣지만 그건 ‘내’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다행인 건 지역의 보건소에 있는 치매안심센터를 다니시기에 엄마도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시고, 같이 사는 동생도 혼자만의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대신 기동력이 있는 난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온다던지, 절에 다녀오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친정엄마는 일주일 중, 주말 빼고 5일 동안 보건소에 있는 치매안심센터(이하 센터)에 다니신다. 주말부부인 동생 내외와 함께 사시지만 그들도 하고 있는 공부와 일이 있으니 낮 시간을 혼자 계시는 엄마가, 때론 다른 증세를 보이는 엄마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일종의 방치가 아닐까?
아이도 사회성을 위해서는 4살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는 게 좋다는 글을 봤었다. 7살부터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었으나 그 글을 읽은 직후 아직은 아기 같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이젠 엄마도 때가 되었다. 동생과 나는 엄마가 다니실만한 곳을 찾아봤고 다행히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에 자리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했다. 문제는 엄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센터에서의 일정을 엄마가 받아들이실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엄마는 엄마의 질병을 납득하지 못하고 계시기에 우리 자매는 엄마께 어떻게 말씀드릴지 부터 걱정해야했다.
왜 엄마에게 필요한 곳인지 차근차근 설명했고, 다행히 큰 마찰 없이 수락하셨다. 노란색 버스틑 타고 센터에 가신 첫날은,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기다리던 그때의 내가 되었다. 전화벨이라도 울리면 잔뜩 놀랐고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적응을 잘 하실까? 낯선 사람들과의 사회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으실까? 가뜩이나 당신의 질병을 인정하지 않으시는데 괜찮으실까? 나라면 어떨까.......
비록 처음 한 달은 센터에 가네, 안가네 하시며 아침마다 동생을 힘들게 했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잘 다니고 계신다.
가끔은, “내가 무슨 유치원생인줄 아는지 맨날 이런 거 만든다.” 내가 봐도 결과물이라는 게 어린이집에서나 만들법한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활동을 하는 이유가 손을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리고 1:1 맞춤 교육이 어려운 여건이라는 것을 알기에 엄마의 반응에 호응하지 않는다. 대신 “어머! 이거 우리엄마가 만드셨어? 잘 만드셨네~”라고 말씀드리며, 마치 어린이 대하듯 한다. 이런 반응에도 늘 한결같지 않으시니 손작업을 해야 두뇌활동에도 좋다고 덧붙여 말씀드린다.
그렇다고 불평만 하시는 건 아니다. 아직은 낯선 사람들과의 적응기에도 어떤 프로그램이 재밌는지, 선생님들은 어떻게 대해주는지, 식사는 어떤지 등등 세세하게 또는 뭉뚱그려 말씀하신다. 그런 말씀을 들으며 센터의 상태를 파악하게 되는 건 가족이라는, 엄마와 딸 이라는 이름으로 묶였기 때문일 거다. 나는 잘 못하면서 말이다.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아 월요일 내내 뒷목 쪽이 많이 아팠다. 귀 안쪽과 연결된 신경이 많이 아파 대상포진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 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하루쯤 쉬면 괜찮겠지’ 싶어 개수대 가득 쌓아 둔 설거지도 모른 채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막 잠 들려는 찰라,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엄마다.
“응 엄마.”
“백중이 언제지?”
“엄마, 아직 더 있어야 해. 8월이라고 했잖아.”
작은 소리로 말씀드렸지만 미간에 주름이 느껴지는 짜증을 간신히 누른 목소리다.
“엄마 내가 지금 좀 아파서......”
엄마는 놀라시며 어디가 아프냐고, 알았다고, 어서 자라고. 당신말씀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다음날 아침. 엄마를 모시고 한의원에 가는 날이다. 아주 개운치는 않았지만 동생을 해방시키기 위해 웬만하면 빼먹지 않으려고 한다.
오후 3시 40분, 엄마를 모시러 센터로 갔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슬프다.
“엄마, 왜?” 전날 일을 기억하시고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괜찮냐 물으신다.
“응 괜찮아~”
엄마를 차에 모신 후 잠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큰따님(나)이 아프다고 하시며 오늘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으셨어요. 큰따님이 엄마 모시러 온 걸 보면 이제 괜찮으신 것 같다는 말씀을 나누며 내려온 거예요.”
어제 통화내용을 말씀드리며 덧붙였다.
“그런데 정말 모르겠어요. 어떤 건 기억을 잘 하시고, 또 어떤 건 잘 못하시고.”
선생님들도 잘 모른다고 하신다.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엄마의 증세는 헛것을 보는 증세라 참과 거짓으로 구분하자면 거짓이다. 그러니 그것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아주 애매한 상황이 많을 텐데 그저 상황에 따라 대처를 하는 거라고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오늘(그날) 점심엔 컵을 들고 계셨던 엄마가 자꾸 병뚜껑을 돌리는 행동을 하시더란다. 해서 선생님이 엄마께 말씀하시길, “어머니! 아침엔 물병이었는데(아침에 물병을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지금은 컵 이예요. 어머님이 헷갈리셨나보다~” 이렇게.
나와 동생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엄마! 이건 컵이야!”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어렵다.
“선생님! ‘일’이라서 가능한 거죠?” 난 위로를 받고 싶었을까? 일로 만나는 것과 일상은 같지 않기에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다행히 선생님은 나의 생각을 읽은 모양이다.
“그럼요~ 가족은 힘들어요. 저도 외할머니가 편찮으셨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저희엄마가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나한테 그렇게 하면 너 효녀 상 탔을 거야!” 라고.
“저희 간호사 선생님 계시죠? 전화 자주 하시잖아요~ 선생님이 그러세요. ‘난 우리엄마가 약을 드시는지 식사는 제대로 하시는지 모른다.’고. 저희는 일이잖아요. 가족은 힘들어요.”
그리고 내 엄마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