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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y 03. 2020

엄마의 일기장

엄마의 도전

엄마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다.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려워 책 읽기가 무서울 정도라 하셨으니 얼마만큼 좋아하셨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학창 시절 교과서 안쪽에 책을 놓고 보다가 선생님께 혼이 난 이야기, 시집살이 시절 친정을 핑계로 책 한 권 들고 전철을 탔던 이야기, 헬스장에서 자전거를 타며 책을 읽으셨던 이야기....... TV는 머리 아파하시면서도 책은 늘 곁에 두고 계시던 엄마였다. 하지만 이제는 급격히 떨어진 시력으로 책 읽기가 힘들어지셨으니 엄마의 큰 즐거움이 사라진 셈이다. 엄마는 그렇게 점점 책과 멀어지고 있다.

인생의 즐거움은 취미의 가짓수에 비례한다는데 그 가짓수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대부분 시력과 관계된 것들이라 우울증을 동반해 오기도 한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엄마의 지금에 도움이 되고 싶다.     






엄마! 일기를 쓰세요~

책 읽기와 함께 엄마가 좋아하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글쓰기다. 책을 많이 읽으신 탓인지 글 솜씨가 좋으신 편으로 학창 시절엔 반성문이나 연애편지 대필도 여러 번 하셨단다. 또한 처녓적엔 엄마의 글이 중앙일보에 실려 팬레터도 여럿 받으셨다며 당신의 젊은 시절을 자랑삼아 말씀하기도 하셨다.


참으로 열심히 살아오신 당신이 나이 들어가고 몸은 여기저기 고장이 나 여간 심란해하지 않으셨던 엄마께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아 드리고 싶었다. “엄마! 글을 써보면 어때?” 책을 내 드리겠다며 여쭈었지만 당신의 나이를 한탄하실 뿐이다. 그럼 일기를 써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마침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가 내린 처방이 ‘감사일기 쓰기’였다는 내용이 라디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책을 읽는 대신 글을 쓰는데서 오는 만족감을 찾으시길 바라는 마음과,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기억의 창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신의 나이 듦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던 엄마가 감사의 일기를 씀으로써 '노년의 위로' 같은 것을 받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시너지북에서 출간된 『인생을 바꾸는 감사일기의 힘』의 내용에 의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힘을 '감사력'이라고 부르는데, 감사력이 강한 사람은 불평할 것들로 가득 찬 곳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되며, 감사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작은 것이라도 감사한 일들을 메모하고 되뇌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덜 감사할 때가 바로 감사함이 가져다줄 선물을 가장 필요로 할 때다. 감사하게 되면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라도 바꿀 수 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당신의 주파수가 변하고 부정적 에너지가 긍정적 에너지로 바뀐다. 감사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의 일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우며 강력한 방법이다."


엄마의 일기

“나중에 너희들이 보고 울까 봐 미뤄왔는데 이젠 써야겠어.” 왈칵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고, "그래 엄마! 내가 예쁜 일기장을 만들어 드릴게~"


엄마께 만들어 드린 일기장


한땀 한땀 정성들여 수까지 놓으며 일기장을 만들어 드리고는 난 자꾸만 확인을 했다.

“엄마! 일기 쓰고 계셔?”

나의 기대를 무너뜨린 채 아니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젠 엄마가 나이 들어서 자꾸 잊어버려~”

“그러니까 일기 쓰시라고 했잖아!” 버럭! 하고 목소리만 커진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두꺼운 스프링 공책 한 권을 내미신다.

“엄마 일기야. 안 쓴다고 했지만 쓰고 있었어. 네가 본 후 태워버려.”

내가 만들어드린 일기장은 너무 작기도 하고 무선이라 쓰기 힘드셨던 모양이다.      

엄마의 일기 중 하루를 옮겨본다.



엄마의 일기장



‘시연이가 일기를 쓰라고 권유한 지 만 석 달 되는 날이다. 언젠가는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며 오늘도 안 쓰셨네~ 핀잔을 주며 혀를 찬다. 아니다. 썼다. 그로부터 석 달째 되는 날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글씨는 달필인 편이고 문장도 괜찮아 부드럽게 이어져 써내려 가는데 자신이 깜짝 놀랐다. 글씨를 써 내려가는데 손가락이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힘이 다 빠진 손가락이 춤을 추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난다. 이건 아닌데....... 부지런히 살다가 잘들 있거라. 엄마 간다. 너희들로 인해서 행복했다. 또 만나자. 엄마 손바닥에 엄마 이름 석 자 써다오. 다시 시작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내 인생은 시작되었다.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 해야 되는데 안 했던 것, 우선 손에 힘을 주자. 내가 제일 잘하던 것. 글씨. 글씨를 쓰는 것이다.‘

-엄마의 일기 중에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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