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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y 07. 2020

내 엄마는 지금

아픔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나의 아픔을 아파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2009년의 그 눈물을 나는 잊지 못한다. 임신 28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대상포진이 왔다. 목걸이 라인에 생긴, 크지도 않은 엄지손가락 한마디만 한 ‘대상포진’은 후유증을 남겨 안면마비가 왔다. 누구에게나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긴 하지만 집 밖을 나갈 수도 없었기에 우울증까지 겹쳤고 아픔의 크기는 산만큼 커졌다. 더군다나 난 임신 중이었다. 그 어떤 약도 쓸 수 없었다. 대문 밖 출입이라곤 병원을 다니는 것뿐, 집안에서 뱅뱅뱅.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도 내 친구는 되어 주지 못한 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흘린 눈물이 1리터도 넘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아픔을 들으신 막내 삼촌은 외숙모와 함께 드라이브를 가셔서 차를 길가에 세워 놓고 펑펑 우셨단다. “시연이가 아프대” 후에 외숙모를 통해서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그렇게 나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내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아픔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일인 것 마냥 살아가기도 하고, 나에게 만은 닥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노년의 위기

몇 달 전, 아이 등교 준비로 바쁜 아침 8시에 막내 삼촌께 전화가 왔다. “새벽 4시에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왔는데 혹시 엄마께 무슨 일이 있니?” 일간 다녀가신다며 간단한 안부만 물은 채 통화는 끝이 났다. 8살 터울의 막내 삼촌을 아들처럼 생각하시는 엄마는 부쩍 삼촌의 안부를 궁금해하셨다. “요즘 막내 삼촌하고 통화하니?, 삼촌이 엄마한테 뭐 속상한 거 있나?, 왜 전화를 안 하시지?” 궁금하면 엄마가 전화하시라고 해도 자주 통화를 하셨던 삼촌이 전화도 안 하시고 다녀가시지도 않으니, 사위도 보시고 손주도 보신 삼촌에게 이제 당신의 존재는 보이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시는 눈치다. 


나라도 엄마 모시고 삼촌댁을 다녀오면 좋으련만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며칠 전 부쩍 야윈 모습으로 다녀가셨다. 그사이 큰 수술을 하셨단다. 너무 놀라 여쭈니 심장 수술이었다며 이런저런 근황을 털어놓으신다. 우리 엄마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노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은 건강상의 문제로 저마다 힘든 시간을 살아내고 계셨다. 엄마가 놀라실까 봐 말씀도 못하시고, 보고 싶은데 왜 안 오냐는 엄마의 투정을 그저 받고만 계셨던 거다. 2개월이라는 시간이 생사의 위기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이겨내기도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아픔을 나누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도깨비가 보여

“시연아! 엄마가 쟤네들 때문에 미치겠어.” 엄마는 도깨비를 보신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그 도깨비들이다. 잘생긴 공유 씨가 나오면 좋겠지만 엄마 표현에 의하면 다리가 없는 도깨비다. 이러한 증상은 치매의 증상 중 하나로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루이소체 치매가 의심된다.’는 갸우뚱할만한 진단을 받으셨다.

 

엄마의 시작은 2017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셋째 외숙모가 큰 수술을 하셔서 병원에 다녀오신 후 감기가 심하게 걸리셨는데, 다음 해 2월까지 3개월을 몹시 힘들어하셨다. 그때 헛것이 보인다는 말씀을 처음 하셨다. 동생과 나는 감기가 심해 ‘기가 쇠하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기가 나아도 헛것이 보이는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알아본 결과 ‘치매의 증상’ 중 엄마와 같은 증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엄마를 모시고 관할 보건소에 가서 치매 검사를 받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지켜보는데 걱정스러운 엄마의 태도가 보였다. 



출처 : 중앙치매센터



문진표의 내용은 대략 이런 거였다. 기본적인 기억력 테스트 외에 “오늘이 며칠인지 아세요?(나 또한 정확히 모를 때가 있어 휴대폰을 확인하는 날이 많지 않은가?, 바쁜 시대에 오늘이 며칠인지 매일매일 짚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가 몇 층인지 아세요?(이 건물이 몇 층짜리 건물 이냐는 질문인지, 지금 당신이 있는 이곳이 몇 층인지를 묻는 것인지 질문이 모호하다. 패스!)”, 이런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 건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오각형 두 개가 겹쳐있는 그림을 보고, 그대로 그리는 거였다. 엄마는 그것을 해내지 못하셨다.(이것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기도 하여 이후 한 병원에서는 잘 해내기도 하셨다.) 순간 ‘아....... 인지능력이 떨어지셨구나....... “ 


치매검사는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대략 15분 정도 소요되는 검사로 26점 이하가 되면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게 되는데 엄마는 25점을 받으셨다. 1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확실히 하는 게 좋겠기에 ‘오히려 잘 됐다’ 싶어 인근 대학병원에서 뇌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하기로 하고 보건소를 나섰다. 예약은 한 달 후에나 잡혀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괜찮을 거야~’ 백번도 넘게 주문을 외우고 나온 결과는 바람과는 달리 우리의 의심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듯한 의사의 소견이 야속할 뿐이었다. 

‘진단명: 루이소체 치매가 의심됨’ 


애매한 진단으로 처방받은 약은 엄마에게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작용을 발생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약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이 다른 약을 써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다른 과로 협진을 안내했다. 다시 검사가 이어졌다. 검사 후에도 속 시원한 진단을 받을 수 없어 **대학병원은 설득력을 잃었고 결국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검사란 검사는 모두 했는데 확진 없이 병만 키운 결과가 되었다. 부작용만 안은 채 말이다.


‘병은 널리 알려라’고 했던가? 친구의 추천으로 지역의 뇌병원으로 옮겼고, 친절한 말씨와 부드러운 자세로 대화를 주도하는 의사 선생님과 상담이 시작되었다.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권해드리는 겁니다.” 서두름 없이 천천히 약을 찾아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에게 맞는 약은 찾을 수 없었다. 예민하셔서인지 특이한 케이스라고 했다. 결국 엄마는 결정을 하셨다. “엄마가 약을 먹지 않고 이겨볼래. 약을 먹으면 엄마가 너무 힘들어.” 

나라면, 나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힘들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길게 살 것인가, 아니면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 것인가. 결론내기가 어려웠지만 후자에 가까웠다. “엄마가 편한 쪽으로 하세요.” 누구보다 열심히 사신분이다. 운동도 열심히 하셨고, 엄살도 심하신 편이라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도 열심히 다니셨다. 식습관도 좋으신데 원인이 무엇일까? 찾을 수 있는 답이 없다.


처음엔 헛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엄마는 도둑이 들어온 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하셨다. 같이 사는 동생이 자다 말고 얼마나 놀랐을지 가늠하고도 남는다. 주무시려고 방에 들어가면 이불속에 누군가가 먼저 눕는다고도 하시고, 식탁의자에 항상 앉아 있다며 식탁과 의자를 버리는 게 어떠냐고 묻기도 하셨다. 다른 증상은 없으신데 이놈의 도깨비가 말썽이다. 다행히 무섭지는 않다고 하신다. 


엄마가 헛것이 보이신다고 했을 때 그것이 가장 걱정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얼마나 무서우실까?’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사는 공간에 진을 치고 있다고 생각해봤다. 내 물음으로 인해 엄마가 무서움이 생기실까 두려워 묻지도 못했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 중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며 “그런데 무섭지는 않아요~” 하시는 거다. 휴~ 한시름 놓았다.


그런데 최근 증세가 좀 심해지심을 느낀다. 새벽에 화장실 가느라 잠에서 깬 동생이 사진을 보내왔다. 거실 바닥에 쟁반이 놓여있고 커피를 3잔이나 타 놓으신 거다. 새벽에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최근 엄마와의 통화 내용은 이런 식이다. “쟤네들 엄마가 왔어, 고맙다며 데려간다고 했는데 쟤네들이 안 가고 진을 치고 있다.” 한숨이 나오다가, 웃음이 나오다가, 무시하라고 말씀도 드리다가, 다리가 있나 만져보라고 했다가, 그냥 무시하시라고, 엄마가 말을 걸어주니까 자꾸 오는 거 아니겠냐고 말씀드렸다. 


모르겠다. 정답이 있으면 좋겠다. 어느 날 물기 하나 없이 바스러질 것 같은 엄마의 모습이, 속상했다가 화났다가 오락가락한다. 엄마가 오래오래 살아계셨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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