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내게 정체모를 작은 악세사리를 보여주며 예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응 예뻐. 근데 그거 뭐에 쓰는 거야?” 용도를 묻는 질문이었는데 그냥 예뻐서 산거라는 대답을 했다. 그러고는 덧붙이기를 천원밖에 안하는데 뭐 어떠냐며 단돈 천원에 스트레스가 풀리니 자주 산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일주일 용돈 2천원을 받는 내 딸아이가 초록색의 물컹한 무엇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만지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입꼬리가 저절로 일그러지는 그것을 학교 앞 문방구에서 500원 주고 뽑았다고 했다. 엄마한테 보여줘 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는 ‘500원’에 힘을 줬다. 뭐냐고 물으니 그냥 만지며 노는 거란다. 모두 다 ‘그냥’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더군다나 친구랑 같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한테 500원을 주고는 같이 했다고, 그런데 친구는 글쎄 장난감이지만 ‘작동되는 도청기가 나왔다’며 신나서 자랑으로 늘어놓았다. 듣고 있는 내 표정이 영 이상했는지 ‘잘만하면 시계도 나올 수 있다’고 마치 시계를 뽑은 아이처럼 굴었다. 뽑히지도 않은 그것으로 나를 설득할 모양이었지만, 난 아이의 말에 설득 당하지 않았다. 갖고 있는 시계도 차지 않으면서 시계를 뽑을 수도 있다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 하다니 어림도 없는 얘기다.
지인은 내게 말했다. 그까짓 오백원, 천원에 아이가 즐거워한다면 괜찮지 않느냐고,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지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소환되며 갑자기 내 자신이 야박하게 느껴졌다. ‘그런가? 오백원, 천원에 아이가 행복하다면 지인의 말처럼 그대로 둬도 괜찮은 건가?’
아이는 6년 째 한 달에 1만원씩을 특정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천원은 매달 기부하는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와 함께 버려져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차라리 기부금에 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내 생각을 아이한테 전하고 싶었지만 그 둘을 비교하는 것이 괜한 죄책감에 들게 할 수 있어 그만두었다.
필요에 의해 구매를 하고 그것을 잘 사용 한다면 오백원? 천원? 그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어도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구매한 상품들은 하루 이틀은 고사하고, 몇 시간을 넘기지 못한 채 어딘가에 처박혀 존재조차 궁금하지 않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결국 돈 주고 쓰레기를 산 것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것들은 재활용도 안 될뿐더러 성분조차 알 수 없다. 모르긴 해도 저가의 그것들이 좋은 성분일 리 없다. 생산 단계에서 철통방어를 하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결국 유행처럼 번져 아이들 손에 많이 쥐어진 후에야 발암물질이 어떻다는 둥, 환경호르몬이 어떻다는 둥 놀랄만한 수치로 뉴스를 장식하기 일쑤다. 아이들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 해 제작된 그것들이 유혹의 손길은 계속 뻗히고 있으니 집에서 단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수요를 막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쓰레기를 줄일 필요가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차고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차고 넘치지 않도록 내 스스로를 다스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2018년 쓰레기대란을 겪으며 쓰레기를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물건을 안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생산 -> 유통 -> 판매 -> 사용' 그리고 폐기 후 다시 생산으로 갈 수 있는, 순환의 고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소비를 할 땐 사용단계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해야하고, 그것이 필요할 땐 내구성은 물론 수리가 가능한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잘 사용하다가 고장나면 고쳐 쓰도록 하고, 더 이상 쓸 수 없어 수명이 다하면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없을 땐 용도를 변경하는 등의 생활기술 동원으로 '물건의 생애주기를 길게' 할 필요가 있고, '순환을 통해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도록' 힘써야한다.
여기에는 생산자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어질 테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싸다고, 예쁘다고 구매하는 패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선, 갖고 있는 것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손 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쓰레기의 양은 줄어들 것이다.
최근에 나는 구멍이 생긴 티셔츠를 꿰매 입었다. 좋아하는 티셔츠이기도 하지만 손목 부분에 구멍만 빼면 보풀도 일지 않은 티셔츠였기 때문에 쓰레기로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색실과 바늘을 꺼내 *다닝기법으로 한땀 한땀 시간과 정성을 들이니 엑센트가 되어 예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쓰레기를 줄였다는 뿌듯함에 기분까지 좋았다. 바로 나름의 생활기술을 발휘한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 소비자가 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