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연 Jul 09. 2022

내 엄마는 지금 III

주문을 잊은 음식점을 보다가


자다가 일어났는데 저승사자가 날 보고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몇 년 전, 엄마는 삼촌께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영화에서처럼 저승사자가 엄마를 데려가려고 등장한 건가?' 속으론 그런 생각도 했지만 우리는 모두 꿈을 꾸신 것으로 정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엄마의 치매 증상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는 그에 대한 의심은 1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엔 전조증상이 있다.

무심히 지나치거나, 의심하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동생이 두 달에 한번 여행을 가다가 한 달에 한 번 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치매에 걸린 엄마가, 동생이 가진 무기처럼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힘든 순간이 많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기에 그렇게라도 나눠야 할 것. 그렇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것.


"엄마가 이젠 거의 다 나은 것 같아. 네가 보기엔 어때?"

오늘 아침 식사를 하시면서 엄마는 내게 질문하셨다. 이럴 때 어떻게 답을 하는 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네~"라고 대답하기엔 너무 영혼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엄마가 실망하실 것 같고. 하긴 엄마의 똑같은 질문에대한 나의 대답이 기분에 따라 달라지긴 한다.


최근 kbs에서 '주문을 잊은 음식점 2'가 시작했다. 2018년에 방송되었던 시즌1이 친정 엄마의 치매 증상 발현 시기와 맞물려 유심히 봤기에 기억하고 있는데 4년 만이다. 이번에도 경증 치매환자를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참여시켜 치매에 대한 인식개선을 돕는, 치매를 바라보는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한몫할 거라고 기대하기에 시청률이 높았으면 좋겠다.


내가 시즌2를 챙겨보는 이유는, 시즌 1을 챙겨 봤을 때와 다르지 않지만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어쩌면 화면 안에서 엄마를 봤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1. 11. 30




2021년 11월 30일, 브런치로부터 제안 메일이 왔다. 브런치의 다른 작가님들처럼 출판사의 제안이 아닌 방송국에서 온 메일이었다. 자신을 KBS PD라고 소개하신 분은 4년 전 방송된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 대한 언급과 ‘치매지만 충분히 할 수 있음’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하셨다. 그리고 내 엄마의 출연 제안을 해 오셨다.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은 물론 개인의 생각까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글이라 지금 다시 읽어봐도 목 끝까지 차오르는 먹먹함에 타이핑되는 화면의 글이 이중으로 보인다.


그때, 많이 울었다. 그리고 많이 고민했다.  

'오늘이 가장 예쁠 엄마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둔다면 두고두고 엄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의 시간을 보내면서 남편과 동생에게 제안받은 내용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엄마의 건강을 염려해 둘 다 반대.


나의 생각은 중립적이었는데 남편과 동생이 모두 반대를 하니, 이번엔 오래도록 엄마를 보고 싶은 나의 입장이 아니라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았다.


내가 엄마라면...


50대가 된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도 놀라는데 70대의 끝에 선 엄마가 되어 때때로 엉뚱한 동을 하는 모습이 방송으로 나간다면 어떨까? 2018년이었다면 모를까,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2년은 붙잡고 싶은 치매가 진행되어 손떨림까지 시작되었으니 생각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본인의 의견도 중요하니 이번엔 엄마께 여쭤봤다. "엄마! 엄마 방송 출연하자고 하면 할래?"

"좋~지!" 의외의 답변. 아무래도 난 엄마의 단호한 거절을 바랐던 건 아닐까?  


2개월 넘도록 담당 PD님과 메일을 주고받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PD님의 글을 보며 참 많이도 울었다. 반대하는 동생과 남편의 의견을 무시한 채 오락가락하는 50%짜리 나의 의견만으로는 나를 포함한 가족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도 안되었기에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거절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요즘 주문을 음식점 2를 시청하며 엄마를 화면 속에 등장시켜본다. 보는 내내 거절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출연 섭외 과정에서 이미 탈락됐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스텝분들의 참을성과 인내심에 배려심까지 더해져 엄마가 등장했다면 여러 가지로 민폐를 끼쳤지 싶다.



가끔씩 안경을 바로 쓰는 것이 어려우신가 보다. 바로 지금.



지난 7일 3화에서 음식점을 방문한 손님들과 인터뷰한 사연을 보며 다시 한번 깊게 든 생각은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 우스갯소리로 하는 '나 치매인가 봐!'라는 말이 더 이상 떠돌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많은 질병이 있지만, 누구나 제발 이것만은 걸리지 말았으면 하는 "치매" 환자가 된 엄마를 보면서 치매도 질병이라는 것을, 늙음과 치매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더하여, 방송으로만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이러한 음식점을 실제로 운영하여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계신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준다면 더없이 좋겠다. 취미의 가짓수와 인생의 즐거움이 비례하듯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다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상쇄되진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딸아이의 초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