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늦게 하길 바랐다
딸아이가 초경을 시작했다. 중학교 입학 전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에 갔을 때(2월 초)만 해도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의 발육 상태를 보며 아직 멀었다고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 그로부터 2주 후 초경이 시작되었다. 더 늦게 시작하길 바랐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은 차치하더라도, 초경 시작 후 3년까지만 성장한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아직 아기 같은 아이가 성장의 다음 단계를 딛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싶었기에 갑작스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준비는 되어 있었다. 속옷과 천 생리대가 그것이다.
딸아이가 태어나면 100% 천기저귀를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다양한 브랜드와 디자인, 후기를 찾아보았다. 썩지도 않는 일회용 기저귀를 연하디 연한 아기 엉덩이에 채운다고?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해 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불편함을 알기에 아기를 위해 천기저귀를 사용하는 건 엄마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주위에서는 말렸지만 검색한 내용에 따르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응가의 경우 변기에 내용물만 버리고 기저귀를 물에 담가 놓았다가 초벌 세탁 후 세탁기에 빨아도 된다고 했다. 매번 삶는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천기저귀 판매 업체에서 써 놓은 글에 의하면 세탁으로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힘들어서 못한다고. 오케이. 그 말에 힘입어 2가지 형태의 천 기저귀를 준비했다.
친정엄마가 사주신 아기 전용 세탁기에 기저귀를 세탁하면 될 테니, 괜찮겠지? 만만하게 생각했다. 아기가 얼마나 자주 쉬를 하는지 응가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혹은 나를 과대평가한 데서 취할 수 있던 행동일 수도.
천 기저귀만 사용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기 기저귀는 크고 두꺼운 데다가 설사라도 하는 날에는 아기가 힘만 주어도 찍! 하고 새똥처럼 기저귀에 묻으니 앉은자리에서 기저귀를 6번 교체한 적도 있었다. 조금 묻었을 땐 바로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훨씬 뒷날의 일이라 그날 이후 일회용 기저귀를 구매했다. 아기한테는 미안했지만 내가 너무 힘드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신 번갈아 사용했는데 특히 여름엔 천기저귀가 훨씬 좋았다. 기저귀 발진 같은 게 보일 때 천기저귀로 교체하면 바로 발진이 없어졌으니 천기저귀의 좋은 점을 확실히 알게 된 셈이다.
그때 다짐했다. 아이가 커서 생리를 하면 반드시 천 생리대를 사용하도록 해야겠다고. 이미 일회용에 길들여진 나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아이는 일회용 사용을 모르게 해야겠다고. 천 생리대가 슬로푸드라면 일회용 생리대는 인스턴트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난, 건강뿐 아니라 성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단단히 마음먹었었다. 기저귀보다는 수월하지 않겠나. 먼 일이기도 했고.
그런데 어느새 아기는 자라 중학생이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생리를 시작하기 때문에 필요한 속옷과 천 생리대는 준비해 두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에서 이미 배운 터라 아이마저도 편안하게 이 상황을 마주했다.
초경 첫째 날, 그리고 둘째 날
생각보다 많은 생리양으로 세탁하기에 바빠 급하게 천 생리대를 추가로 만들었다. 세탁은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초경 셋째 날.
일회용 생리대를 내밀면서 양이 많을 때와 집 밖에서는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추천해 줬다.
"엄마! 이거 언제까지 하는 거야?"
"보통 일주일 하지."
"아니, 몇 살까지 하는 거냐고."
"음.... 길면 60, 짧으면 50? 사람마다 다 달라."
아이는 놀랐다. 아주 많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여자라면 생리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불편함과 아픔 또한 감수해야 한다고. 그런데 아이의 물음에 답 하면서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내 아이는 빠르지 않은 편이라 중학교 1학년인 지금 시작하는데 초등학교 3~4학년 때 시작하는 아이도 있다고 하니 기간은 더 늘어난다. 늦고 빠르고를 따지지 않더라도 평균적으로 따져봤을 때 대부분의 여성들은 40년 이상 생리를 하는 것이다.
자그마치 40년.
한 달에 일주일은 생리를 하니 1/4인 셈. 그러면 10년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내 딸의 일이 되고 보니 자연스럽게 따져보게 되었다.
남성의 군대 문제와 여성의 생리문제를 비교하며 대두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흘려듣기도 했고 그게 비교할 대상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이의 물음으로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다름 아닌 '군대'였다. 군 복무기간과, 힘듦과, 수반되는 다양한 일들을 여성의 생리와 비교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에 대한 존중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직장생활을 했을 때 남성은 호봉 자체가 달랐다. 인사과에 이유를 물으니 군필자에 대한 인정이었다.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일 학력에 군필자는 3호봉부터 시작하고 미필자는 1호봉부터 시작하니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직장생활에서 출발선이 달랐다. 같은 남성의 경우라면 군필자와 미필자의 차이는 둬야겠지만 남성의 군 복무기간을 인정하고 존중하듯이 여성도 그에 마땅한 대우가 필요하지 않을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한번쯤 생각해보길 바란다. '나에게 딸이 있다면, 내 딸이 생리를 시작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