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어 쓸모를 다 한 '테이블 보'는

스토리가 있는 앞치마가 되었다.

by 시연


2007년 8월이니까 오래되었다.

180cm나 되는 기다란 나무 테이블을 사용 중이었는데 좁고 긴 테이블은 운치 있어 보이지만, 가끔 맨얼굴이 싫을 때나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가 있어 안성맞춤인 테이블보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햄프 리넨을 닮은 두꺼운 리넨을 폭은 그대로 둔 채 길이만 자르고, 끝쪽엔 라벤더를 손자수로 수놓으니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졌다.



한때는 테이블 보




하지만 관리를 못 한 탓인가 해가 갈수록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엔 착착 접어 수납장안쪽에 놓이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기를 5년.

헤아려보니 참 오랫동안 수납장 속에 있었다.


앞치마가 필요해서 만들기로 하고 원단을 고르던 중, 한때는 예쁨 받았던 낡은 테이블보가 눈에 들어왔다. 얼룩진 부분이 있었지만 잘만 재단하면 앞치마 하나 정도는 거뜬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네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겠어!'

내 키와 품에 맞게 사이즈를 정한 뒤 가위로 쓱싹쓱싹. 재단사가 되었다.







다음엔 부자재를 정할 차례다. 부자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각적으로 매우 달라지기에 집중과 선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새로 살 생각은 없었기에 부자재를 모아놓은 서랍을 열었다. 알맞은 끈과 고리를 꺼내어 대충의 형태를 잡아본 후 원하는 모양대로 바느질을 했다. 무엇하나 새로 산 거 없이 100% 재활용한 것으로 완성한 앞치마다.







수건을 샀을 때 묶여있던 도톰한 면 끈은 목과 허리끈이 되었고, 양말을 샀을 때 들어있던 면 라벨은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상단 포켓에 달아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목에 두르는 끈 조절을 위한 금속 부속은 오래전 어딘가에서 떼어낸, 언젠가 사용하게 될 거라 믿으며 보관해 두었던 것이다. 아마도 멜빵바지에서 떼어낸 부속이 아닐까 싶다.







무릎 아래정도의 길이로 앞치마 치고는 긴 편이라, 두 폭을 겹쳐서 앞 트임이 있도록 만들었더니 움직임이 편하고 무릎 나온 운동복도 가려줘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나 화단에 물을 주러 나갈 때 여간 용이한 게 아니다. 색감이며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요즘 가장 좋아하는 앞치마가 되었다.

(사실 요리할 때는 앞치마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한 시간이면 되지 않겠나 싶었는데 밥 달라는 고양이 소리에 시간을 보니 어느새 2시간이 넘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차라리 사겠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을 좋아하기도 하고, 물건의 수명을 늘렸다는 뿌듯함으로 좋아지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하여 이와 같은 과정은 지구 환경에 무해하다는 것. 또 더하여, 스토리가 담겨있지 않은가. 남의 집 앞치마에는 없는.


이것은 앞으로 5년, 어쩌면 10년 정도는 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쓰임을 다 한 때가 오면 파우치나 컵받침 등 작은 것으로 만들어지겠지.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는 것부터 즐거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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