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로 태어나 줘

by 시연

‘장녀’라는 무게감을 느끼며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 무게감도 그렇게 젖어 든 건지, 아니면 애당초 이렇게 태어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동생이 값비싼 옷을 사 입을 때도, 해마다 해외여행을 갈 때도 난 그러지 못했다. 아빠의 병원비와 그로 인해 생긴 빚으로 첫 직장에서 3년 동안 모은 적금은 물론, 지속적인 경제 활동에도 불구하고 내 것은 없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1년에 천만 원씩 모아 병원비 때문에 생긴 빚을 10년에 걸쳐 모두 갚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아무도 내게 바라지 않았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다음 생애에는 철부지 막내로 태어나고 싶다. 조금은 천방지축이어도 좋겠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동생이 여행 간 사이 엄마와 단둘이 3박 4일을 지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불쑥 오래전 일을 말씀하셨다.


“넌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빈손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었어. 엄마 속옷 한 장이라도 사 들고 들어왔지. 그리고 그때 참 좋았어. 엄마한테 건강검진 받게 해 줬던 거. 고맙고 많이 자랑스러웠어.”

잊고 있었다. 내가…… 그랬었다. 서른 즈음, 해마다 내 생일이면 강남의 모 병원에서 종합 건강검진을 받으실 수 있도록 했다.


“엄마! 내 생일 선물이야!”


내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 건 대학 선배 언니 덕분이다. 선배 언니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보니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하지만 난 서른이 되도록 결혼할 생각이라곤 없이 지냈기에,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더 느낄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싶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게 해 주신 감사함을 담아 ‘내 생일 선물’을 엄마께 드리기 시작했다. 국가에서 책임져 주기 전까지 해마다 내 생일은 ‘엄마의 종합 건강검진 날’이 되었다.


엄마의 기억대로 나는 엄마를 잘 챙겼는데, 동생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늘 동생 편에 계셨다. 친구 말에 따르면 ‘나 닮은 자식’한테 더 정이 간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의 외모를 쏙 빼닮은 동생은 엄마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자랐다.


“열 손가락 깨물어 봐라. 안 아픈 손가락 있나.”

가끔 엄마께 내 속내를 드러내면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느꼈다.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의 일이다. 일주일 용돈으로 500원을 받았다. 필요할 때마다 받다가 또래 친구들이 ‘용돈’을 받자 나도 용돈을 받고 싶었다. 나의 생각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매일 100원씩 받을 건지 일주일에 500원을 받을 건지 선택하라고 하셨다. 목돈으로 받고 싶었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500원을 받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일주일에 700원이 아닌 왜 500원이었는지 궁금하지만, 몰아서 주는 대신 짜임새 있게 쓰길 바라는 마음에 썼던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명히 여쭤봤겠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없다.


‘겨우 500원?’ 할 수 있지만, 금액의 크고 적음에 대한 불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적은 금액은 아니었던 듯하다. 다만 2살이나 차이 나는 동생과 같은 금액으로 받는다는 것이 불만스러워 엄마께 이의 제기를 했고, 엄마는 ‘평등’이라는 단어를 무기로 삼으셨다. 엄마의 처사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때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기라 그랬는지 ‘평등’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나의 불만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일주일 용돈 500원’의 서운함을 풀기로 했다. 그때의 일을 말씀드리며 ‘평등’이라는 단어 대신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꺼내 엄마의 생각이, 행동이 ‘잘못이었음’을 말씀드렸다.


“난 내생에 태어나면 꼭 막내로 태어날 거야.”


“……엄마는 뭐로 태어나면 좋을까?”


엄마의 갑작스러운 물음이 당황스러웠지만 멈춤 없이 대답했다.


“내 엄마로 태어나야지.”


"정말? 그래도 돼?“


엄마의 눈 주위는 이미 빨개졌다. 나까지 눈물을 보이면 눈물바다가 되고 말 테니 터지기 직전인 눈물을 감추고 단호하게 말했다.


“응, 내 엄마로 태어나. 그리고, 그래! 나만 낳아. 나만 낳아서 차별하지 말아 줘. 그땐 천방지축 철도 좀 늦게 들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이번 생은 나도 이렇게 태어나 어쩔 수 없으니 다음 생은 엄마의 외동딸로 태어나 그렇게 살게 해 줘. 그리고 그다음 생애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


엄마는 충분히 좋은 엄마였고 존경받아 마땅한 삶을 살아오셨다. 사랑을 줘야 하는 자식이 둘이라는 이유로 나는 엄마께 투정을 부렸지만, 이제 나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선다. 외동으로 자라는 내 아이는 내가 바라던 그 만족을 온전히 느끼고 있을까 하는.

자식 키우는 게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