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동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셨다. 15년 전 내가 현재의 우리 집으로 이사 왔을 때,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를 가리키며 90이 다 되셨다고 했다. 작지 않은 체구에 새하얀 머리. 청바지가 잘 어울리던 그녀는 환한 미소와 꼿꼿한 걸음으로 주변 어른들의 부러움을 샀다. 90대 할아버지와 90이 다 된 할머니. 그렇게 두 분만 살고 계셨는데, 몇 해 전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할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던 따님이 매일 아침 오셔서 주간보호센터 차량을 이용하도록 도왔다.
할머니가 어떻게 혼자 밤을 지내시는지 궁금하고 걱정되었지만, 더 깊게는 굳이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혼자 계실만하니 계시지 않겠나’라는 바람만 가질 뿐.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댁 앞에 낯선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였다. 동네 회장님 격인 아저씨 말씀으로는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실 거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맺혔다. ‘결국, 삶의 끝에 머물 곳은 요양원인가.’
공동주택이 지어진 1989년에 입주하신 할머니는, 삶의 끝까지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혼자 사는, 100세가 다 되어가는 그녀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은 채, ‘인생의 끝에 나는 어디에 머물게 될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함께 살고 있던 엄마에게로 천천히 이어졌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말씀하셨다. 요양원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나 역시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게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했기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어쩌면 당신을 모실 자식은 동생이라고 어릴 적부터 말씀하셨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거동이 힘들어진 엄마는 내게 오셨다. 엄밀히 말하자면 엄마의 의견은 묻지도 않은 채 내가 모시고 왔다.
그때 우리 집에는 중학교 2학년 딸과 나, 그리고 남편,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엄마를 모셔 오기 전 가장 걱정된 것은 딸아이였다. 한창 예민한 시기, 나의 부족함으로 아이가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처음 두 달은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고, 그 무엇을 토해낼 수도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행여 남편과 딸아이의 잠을 방해하면 안 되었기 때문에 엄마와 같은 방을 사용하며 작은 소리에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새벽 2~3시, 엄마의 부름에 빠진 잠에서 몸을 일으켰다. 모른 척 자고 싶기도 했지만, 나 외에 다른 가족이 힘들기를 원치 않았기에 생각을 떨쳐내고 일어났다.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까닭에 나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했다. 해소할 방법이 없었으니 느는 건 눈물뿐. 날이 더할수록 미래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나이 드는 것 자체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낮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여지없이 나를 찾았다. 설거지를 할 때도, 식사를 준비하거나 화장실에 갈 때도. 두세 번까지는 참다가 그 다음번째엔 화를 냈다. 나 좀 그만 부르라고.
엄마가 영원히 살 줄 알았다.
애당초 너무 잘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목표는 단 두 가지.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심해진 근 손실로 혼자 걷기 어렵게 된 엄마를 혼자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바짝 마른 몸에 살이 붙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욕심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더뎌도 너무 더딘 차도에 답답했고, 엄마가 잃어가는 것들을 보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쌓이니 중학교 2학년 아이보다 예민해졌고, 내가 엄마를 보며 늙는 게 무서워졌듯 내 아이가 혹시라도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울까 봐 걱정이 앞섰다.
“엄마는 나중에 시골에서 살 거야. 걱정하지 마.”
요양원도 괜찮다고, 다만 잘 알아보고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슬그머니 드러냈다. 나와 같은 힘듦을 느끼지 않기를, 당연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랐다.
다시, 엄마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내가 엄마라면…….’ 엄마의 시간이 너무나 무료하게 느껴졌고, 사회성이 필요한 시기의 아이를 돌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닿았다. 어쩌면 난 엄마를 방치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어 혼자 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고, 요양보호사와 주간보호센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인근 센터를 방문해 상담받고, 믿을 만한 공간과 시설을 찾아보았다.
누구나 원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 적어도, 삶의 태도가 만들어낸 결과와 만나길 바란다. 삶의 끝에 어디에 머물든, 햇살 드는 창가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있는 곳이기를. 그리고 모두가 기쁘기를. 그 끝에서, 사랑과 존중과 예의를 놓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