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한가득 사과가 있어. 거기에는 벌레 먹은 사과도 있고, 모양이나 빛깔이 예쁘지 않은 사과도 있고, 아주 먹음직스럽게 생긴 새빨간 사과도 있어. 너는 어떤 사과를 먹을래?”
엄마가 이 질문을 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제일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을래.”
“좋아. 그럼 너는 계속 맛있는 사과만 먹게 될 거야”
엄마의 지지와 응원 속에서 나는 나의 선택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결정은 늘 내가 했고 열심히 살았다.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결과는 과정을 지나야 알 수 있기에 지금 가는 이 길이 맞는 길이길 바라며 걸었다. 하지만 다른 길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날이 닥치기도 했다. 그때 부유하던 수많은 ‘if’들로 나는 괴로웠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들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오십이 넘었는데 후회가 찾아오면 어쩌자는 건가.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잡을 수 없는 엄마를 붙잡고 울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오래전 도보 여행을 할 때였다. 내 나이 서른 초반. 인솔하시는 선생님은 내가 너무 느긋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을까.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씀에 동의할 수 없었다. 10년 동안 병석에 계셨던 아빠의 병원비를 보태며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치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열심히 살았다. 내게 닥친 힘듦은 내가 져야 할 책임으로 받아들이며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스스로에게 바라며, 내 안에서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삶의 태도 덕분인지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도 나는 행복했다. 그런데 요즘 난 자꾸 타인의 삶과 비교하게 된다. 마음에 빈틈이 생긴 걸까? 딸아이의 질문이 시발점이 되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엄마! 허준이 교수 알아?”
친구들이 딸아이에게 허준이 교수를 닮았다고 했다기에, 누구냐 물으니 ‘수학자’라고 했다. 이후 ‘유퀴즈’에 출연한 허준이 교수를 보게 되었는데, 그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듣고 감명받아서는 얼굴을 감싼 채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그로 사는 삶은 어떨까. 나는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 했었을까. 다르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다르게 살 수 있을까. ‘부럽다’기 보다는 ‘멋짐’이 풍기는 타인들의 모습을 보며, 자꾸만 궁금함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고 언제나 내 선택을 지지해 준 부모님 덕분에 후회스럽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후회되는 지점은 찾지 못한 채 반성이 앞섰다. 그저 내 아이는 훌륭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꾹 눌러 담으며 겨우 가라앉혔다. 아마도 나의 이런 기분은 낯설게 느껴지는 내 모습에서 증폭된 것 같다.
100일짜리 적금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신규 은행 앱에 접속했고 신분증이 필요했다. 사진이 맘에 들지 않는 운전면허증 대신 아주 오래된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시키는 대로 신분증을 촬영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는데, 뜬금없이 지금 모습을 촬영하는 단계가 나왔다. 이용하지 않았던 은행이라 검증 단계가 까다로운 건지 모르겠지만 가입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촬영할 수밖에. 하지만 ‘신분증의 나’와 ‘지금의 나’는 계속 불일치로 나왔고, 도무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다. 열 번쯤 시도했지만 실패. 결국 최근의 신분증으로 다시 진행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적금에 가입한 후 휴대전화의 카메라 앱을 열어 셀카 화면 속의 나와 마주했다.
낯설었다.
낯섦은 슬픔까지 가져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일까?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만난 지금이다. 말보다는 삶의 태도로 보여주는 사람이고 싶고, 그 태도와 닮은 결과와 만나길 바랐다.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
생의 마지막 몇 달
우리집에 계셨던 그 몇 달이 어떠셨습니까.
굳이 모셔 와서 당신의 명을 재촉한 건 아니었을까요.
그날, 당신을 우리 집으로 모셔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당신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더 많이 아프시기 전에,
그립다던 아빠 곁으로 가셔서 다행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가시고 난 후, 수많은 ‘if’들로 저는 참 많이 괴로웠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떠실까요.
혹여, 저를 원망하시는 건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 꿈에 이렇게나 안 오실 수 있을까요.
지금 어떤 모습으로 계신지 모르겠지만, 다음 생애도 나의 엄마로 살겠다고 하신 약속, 잊지 말아 주세요.
제가 지은 빚이 있다면 그다음 생애에 제가 당신의 엄마로 살아 갚겠습니다.
당신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당신의 딸로 살아서 저는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