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행복해

by 시연

“엄마는 살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

“우리 시연이 주연이 대학 갔을 때.”

‘엄마’라고 물었지만, 나는 사람 고옥숙으로서의 대답을 기대했다. 대학 입학이라니. 그게 뭐라고. 그게 그렇게나 큰 행복이었을까.


“그럼 엄마가 두 번째로 행복했을 때는 언제야?”

“우리 시연이 주연이 대학 졸업했을 때.”

2023년 5월,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다. 식사하다가 그만 울컥해서 떨어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정말 간신히 참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다시 여쭈었다.

“엄마로서 말고 사람 고옥숙이 가장 행복했을 때 말이야. 자식들과 관련된 거 말고, 없어?”

엄마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떻든 간에 난 우리 시연이 주연이 잘 자라줘서 너무 행복해. 지금도 행복해.”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고마워. 내 엄마여서 너무나 고마워. 사랑해. 내가 사랑하는 게 느껴져?”

“응”

“어디로 느껴져?”

“온몸으로 느껴져.”

그로부터 넉 달 뒤, 2023년 9월 15일.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그때 이미 건강은 많이 기울어 있었다. 골절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근육 손실이 심해졌고, 퇴원 후에도 회복의 기미가 없었다. 식사량도 줄었고, 인지력도 점점 생기를 잃을 때가 잦아졌다.

그런 상태에서 하신 말씀 — “지금도 행복하다.”

그 한마디가 메아리처럼 남아, 나는 일상 곳곳에서 엄마를 만난다. 식사를 준비하다가도, 문득 내뱉은 말에도, 불쑥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울컥 입을 막게 된다.


요즘 딸아이를 대하며 엄마라는 자리를 자주 떠올린다. 다음 생에도 나의 엄마로 살아달라고 말했을 때, 그래도 되느냐 물으셨던 엄마가 생각났다.

단, 나 하나만 낳으라고, 외동딸로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다. 나는 외동으로 사는 삶이 어떻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외동딸인 내 아이는 과연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고 있는 걸까.


어느 날, 아이의 방을 보고 짜증이 났다. 얼마 전 깨끗이 치워두었는데, 또다시 책과 옷, 종이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었다. 책상도 다르지 않았다. 펼쳐진 문제집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책장에 꽂으면 좋을 걸 왜 좁은 책상 위에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가 등교한 후 보통은 청소와 대충의 정리를 한다. 이 패턴은 계절별로 다르긴 하지만 늦어도 아이의 하교 전까지는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 마냥 정돈된 상태로 만들어 둔다. 바쁜 일로 아이보다 귀가가 늦어진 어느 날 피곤한 몸 때문일 수 있지만 아이의 어수선한 방이 나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책상 위는 네 머릿속과 같은 거라고 했잖아. 이 책들은 책장에 꽂아두면 안 돼? 정리 정돈 좀 하자. 너무 지저분한 거 아니야?”


아이는 하나도 지저분하지 않다며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이 하나도 괜찮지 않아 한숨을 쉬고 말았다.

공부고 뭐고 일단 방 정리부터 하라고. 엄마가 네 방 청소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냐고. 이제 엄마는 네 방 청소 안 해줄 거라고 말하고는 아이 방을 나왔다.


화를 가라앉히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떻게 자랐는지.

엄마는 내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럼 나는 엄마를 한 번도 화나게 한 적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엄마는 언제나 우렁각시가 되어 주셨던 걸까. 생각해 보니, 엄마는 늘 삶의 태도로 가르치셨다. 왜 동생만 챙기냐고 투정하면 엄마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내 책상 위에 놓아두셨다.

어떻게 자녀 둘을 그렇게 키우셨는지 묻고 싶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기에 자꾸만 더 생각났다.


나도 엄마처럼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제일 좋은 것은 언제나 아이 것이 되게 했다. 부족함 없이 자라게 하려 애썼다.

그런데 요즘은 자주 흔들린다. 엄마의 손톱만큼도 닮지 못한 나를 본다.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야 마땅할 텐데, 하나 키우면서도 벅차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이도 중요하지만, 나도 중요하다는 말을 자꾸 하게 된다. ‘내 마음도 헤아려 달라’는 말이 입에서 맴돈다.

그러다 문득,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지금도 행복해.”

그 말이 오늘의 나를, 아주 조용히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