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삽니다 책 팝니다

by 시연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누구세요?"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아내라고 말하는 남편은 한미서점의 주인이다. 진도 9, 진앙지는 가슴 중앙. 자기 혼자 뛰어나가 살겠다고 요동치는 심장을 무시하며 시작된 인연의 매개체는 다름 아닌 책이었다. 2007년 8월, 거의 출근하다시피 한미서점을 들락거렸던 난, 매번 책을 사면서 그 남자의 시선이 부끄러웠다.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는 않나?‘ 하는 의심을 할까 봐 한....... 다섯 번째쯤 되었을까? 난 내방 책장에서 판매할 몇 권의 책을 골라갔다. 구차하지만 난 그남자를 만나러 갈 구실을 만든 셈이다.





헌책방(한미서점)의 책은 100% 손님들에게 매입한 것으로 채워진다. 책 욕심이 있는 나는 책을 구매하면 책꽂이에 오래도록 두게 되는데 한 번 읽으면 두 번 다시 읽지 않는다며 미련 없이 판매하는 손님들 덕분에 근간의 책들도 깨끗한 상태로 입고되어 서점 책장에 꽂히게 된다. 하지만 대개는 이사 가면서 책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아이가 어릴 적 읽었다며 이제는 더 이상 소용 없다는 이유로, 시력 좋을 때 많이 읽었지만 책 읽기가 어려움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는 이유로, 저마다의 사연으로 들어오는 책들은 조금은 슬픈, 어쩌면 많이 아픈 이유가 숨어있기도 하다.


손님들은 가끔씩 묻는다. “집에서 안 보는 책 가져와도 되나요?”, “어떤 책을 사시나요?” 안보는 책 있으면 가져오면 되지만 모든 책을 매입하지는 않는다. 헌책방에 판매할 생각으로 가져온 책에 바퀴벌레 흔적이 있다거나 음료에 젖어 쭈글쭈글한 책들은 어차피 폐기처분해야하니 매입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서점마다 취급하는 책들이 있어 우리의 경우엔 학습물이나 전공서적도 매입대상이 아니다. 전에는 손님이 판매하는 모든 책을 매입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가져오셨는데 골라서 매입하기가 미안했다는 남편은 해마다 몇 톤씩 책을 폐기하고 나서야 방법을 바꿨다.


우연히 ‘헌책방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실린 기사’의 댓글을 보게 되었다. 100원에 사서 정가의 반값을 받는다며 헌책방에서 큰 수익을 남기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벌써 부자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매입한 책이 어느날 절판되어 책값이 금값으로 오르는 책들도 더러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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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정보를 구할 수 없었던 때에는 정가 대비 또는 주변시세를 감안하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주인 맘대로 판매가를 매겼지만 현재는 각종 정보를 토대로 시세와 상태, 재고를 감안하여 판매 가격을 정하고 있다. 시세라는 것을 몰랐던 때, 아동서적을 무조건 1000원에 팔았었다. 여러 차례 방문했던 젊은 손님이 특정 작가들의 책들을 보이는 대로 구입하기에 ‘소장하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여 깎아주기도 하고 덤도 줬다. 1년 뒤, 시세 반영을 통한 가격 책정을 해보니 그 손님이 구입했던 책의 가격이 무려 2~3만 원 대에 거래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찾아온 그 손님에게 가격의 변동을 알리자, 그는 구매했던 책들을 모두 팔면 얼마를 줄 거냐 물어왔다. 그 물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책을 투자의 하나로 되팔 목적으로 모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책방 주인들도 정보에 밝아야 하며, 자신만의 판단으로 정을 줘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각오는 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손님들에 의해 묻힌다.


10년 이전의 일이다. 주변에 학교가 있다 보니 학습물을 취급했었는데 교과서를 500원에 판매(다른 서점에서는 비싼데 여기는 왜 이렇게 싸냐고 손님은 물었다.)하는 것을 보고 ‘주변과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하지 왜 싸게 파느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아이들에게 교과서 같은 것을 비싸게 판매하면 책을 훔쳐서 헌책방에 판매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책값은 매입 가격에 따르기 마련이라 비싸게 판매하려면 매입가도 높게 책정된다. '싸게 사서 싸게 팔면 필요한 사람에게 좋다'는 얘기다. 책을 판매하는 사람들이야 비싸게 책정하면 좋겠지만 입장 바꿔 구매자가 되었을 땐 책값이 저렴해야 좋을테니, 가격 책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가장 어려워 하는 일이다.


“야~ 야! 너네는 서점에 팔릴 책을 갖다 놔야지 사람만 좋아선 안돼!” 처음 방문하신 지 2년 정도 되는 부모님 연배의 단골손님 말씀이다. “안 닦고 안 고치고 팔면 어떠냐! 어차피 중고인데.” 많은 간섭스런 조언을 하신다. '어차피 중고인데.......' 이 말이 메아리가 되어 웽웽 거리지만 애정 어린 조언이라는 것을 알기에 웃음으로 넘기며 그 말씀을 듣는 중에도 손은 열심히 움직여 책을 닦는다. 책장에 꽂힌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쌓이기 일쑤지만 결코, 이 과정을 빠뜨리지는 않는다. 마치 새 책처럼 깨끗한 상태에서 들어오는 책도 내지를 살피고 표지를 닦아야 책장에 꽂게 되는 헌책방 주인은 일이 많다. 그러니 헌책방 주인도 ‘이왕이면 깨끗한 근간의 책으로 손이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팔릴 책만 매입한다고, 깨끗한 책만 매입한다고 헌책방 주인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너네는 팔릴 책을 갖다 놔야지~” 맞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팔릴 책들만 매입하여 판매한다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는 아닌 듯싶어 고작 천원 이천원에 판매될 책도 점검하고 수선하고 닦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몇 년을 한자리에 꽂혀 있다가 어느날 우연처럼 주인을 만나기도 하니 들어온 모든 책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 책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100권 이상의 새로운 책이 나오고 그중 몇 권만 살아남는 신간 시장에서 많은 책들은 도태된다. 또 살아남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헌책방에 들어온 책들은 읽히건 도구가 되었건 적어도 한 번쯤은 선택받은 녀석들이다. 벌목한 나무로 만들어진 종이책이 그냥 버려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도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해져 오늘도 '한미서점은 작은 숲'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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