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 촬영 섭외가 들어왔다. 누구는 한미서점이 알고 보면 돈이 많아 제작지원을 했다는 이야기도 했고, 지인 찬스를 썼을 거라는 추측도 들려왔다. 모두 다 틀렸다. 도깨비 촬영을 의뢰했던 장소 섭외자는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을 사전답사한 후 한미서점을 포함한 2곳을 마음에 들어했고 감독과 작가에 의해 한미서점이 최종 선정된 것이다. 사실 제목만 들었을 땐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도 아니고 무슨 제목이 도깨비지?' 싶었다. 그때만 해도 도깨비의 위력이 그렇게 대단할 줄 누가 알았을까?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촬영 섭외가 들어오더라도 연락도 없이 무산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냥 '와야 오나보다.......'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그렇게 10월을 보내고 찬란하고도 쓸쓸한 11월이 되었다.
뚜둥~! 도깨비 촬영 첫날. 사전 정보가 없던 난 스텝에게 배우가 누구냐 물었다. ‘공유’와 ‘김고은’이라는 이름에 놀라 나도 모르게 물개 박수를 쳤다. 그때부터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한미서점에 공유씨가 오다니....... 물론 서점 손님으로 방문한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그건 영화 ‘노팅힐’에서나 가능했던 일이고, 엎어치나 메치나 유명한 배우가 방문한다는 것! 그 자체가 놀랍기만 했다.
촬영 세팅이 끝나자 배우가 들어왔다. 누가 뭐란 것도 아닌데 난 뒷모습만 겨우겨우 숨죽이고 쳐다보기를 30분째, 하필이면 듣고 있던 문학 수업이 있어 오전 10시까지 가야 하는 기로에서 땡땡이를 치느냐 마느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일지 몰라. 가지 마~~~! "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갈등을 했으면서 도도한 척! ‘공유가 대수야? 수업을 들어야지!’ 하고는 공유를 버리고 서점을 나섰다.
거의 한 시간이나 수업에 늦은 이유를 설명하자 강사님 말씀이 더 가관이다. ”나 같으면 안 온다. 공유 어때요? 김고은은 예쁜가요?" '헉! 순간, 오지 말걸~' 뒤늦은 후회를 했다. 수업이 끝나고 부리나케 서점으로 와보니 '이 휑~ 한 느낌은 뭐지?' 대신 마시다 만 커피가 들어있는 테이크아웃용 컵만 남기고 사라진 공유 씨. 그게 뭐라고 난 생각이란 것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고 있었으니 도도함은 물 건너 간지 오래다. 이런 나를 봄 남편은 김고은 씨와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며 어느새 배우 김고은의 팬 모드로 접근하면서 멈추지 않는 입술의 향연을 선보였다.
일생에 단 한번 일 줄 알았던 배우 공유 씨와의 만남은 이후에도 세 번의 만남이 더 있었다. 하지만 사진은 찍을 수도 없었고 싸인도 받지 못했다. 엄청난 인기몰이로 서점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서점 밖에서도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진기한 풍경이 연일 이루어졌다. 드디어 촬영 마지막 날, 기필코 싸인을 받으리라....... 단단히 다짐을 하고 숨죽여 지켜봤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점 밖은 이미 수많은 인파로 둘러싸였고 남녀 주인공의 재회 씬이 촬영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모든 촬영이 끝났다. 근접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를 풍기던 공유 씨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근한 나는, 과감히 싸인을 부탁했다. “싸인 좀 해주세요~!”
난 은탁의 시집(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 몰라)과 엽서를 내밀었다. 너무나 흔쾌히 수락을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름이 뭐냐 묻는다. “해솔이에요. 공유 아저씨가 왜 김신 아저씨인지 헷갈려해요” 했더니 커피 향을 닮은 목소리와 따뜻함이 배어있는 눈빛으로 “둘 다 다 나야. 헷갈려하지 마~” 라며 인사를 나눈다.
드라마 도깨비는 한미서점에게 분명 '상'이었다. 드라마에 서점 간판이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그로 인해 하루에 수백 명이 다녀가는 서점이 되었으니 살다가 또 이런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배다리에도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시끌벅적 단체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 혹시라도 인근 상인들에게 불편을 초래할까 봐 여쭈니 사람이 많아져 좋다 하신다.
하지만 이것만은 좀 지켜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많다. 한미서점은 서점이다. 책을 파는 곳으로 그냥 관광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손님이 들어오시면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는데 그냥 본 체 만 체 휙! 촬영 장소만 쓰윽~ 보고는 그냥 또 아무런 인사도 없이 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함께 온 아이가 책을 사는 거냐 물으니 엄마가 말한다. “아니야 그냥 봐~” '헉!' 정말 헉 소리 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입장료를 받으라는 분들도 계신다. 서점 방문자는 책을 꼭 사야 하는 규정을 만들라는 분들도 계신다. ‘마음에 와 닿는 책이 없다면? 관광지도 아닌데 입장료를?’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우린 그냥 우리의 호흡대로 걷는 것을 택했다. 대신 책 손님에게 방해가 되어 내부 촬영 금지라는 팻말을 달았다.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멀리서, 인천의 배다리, 한미서점이라는 책 집에 와서, 그것도 아이들과 같이 와서는 “도깨비 촬영지야. 자 서봐! 찰칵! “ 이렇게 끝이 아니라 1953년부터 시작한 역사가 있는 한미서점의 서가를 둘러보며 헌책방엔 어떤 책이 있는지, 엄마 아빠가 어릴 적 읽었던 책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음에 와 닿는 책이 있으면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책 집엔 어떤 책이 있는지 둘러봐도 좋을 일이다.
촬영지로서만이 아닌 ‘헌책방 나들이!’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