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그저 책이 아니다

책을 보아 온 사람의 흔적과 그보다 더 진한 스토리가 담겨있다.

by 시연


따르릉~~~ “네~ 한미서점입니다. ” “여보세요? 여기 ** 경찰서 강력계인데요. 범인이 한미서점에서 책을 훔쳤다고 자수를 했으니 책 가지러 오세요~” '강력계'란 단어도 '범인'이란 단어도 낯설기만 했기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더니 다시 이야기를 전해준다. 자수한 범인이 2007년부터 5년 여간 400여 권의 책을 훔쳤는데 그중 한미서점에서 50여 권의 책을 훔쳤다는 것이다. 경찰서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을까? 우리 책은 가격을 스티커로 붙여 놨는데 그 책들이 있느냐 되물었다. 스티커야 떼면 되는 거 아니냐며 답답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경찰은 범행 현장 재현에서 범인이 콕 집어 밝혔으니 얼른 와서 좋은 책 가져가라는 것이다. 좋은 책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던 난 빨리 가보자고 남편을 재촉했다. "왜 훔쳤을까? 돈은 없고 책이 보고 싶어서? 어떻게 그 많은 책을 훔쳤을까? 그런데 왜 자수한 걸까? 왜 그랬을까?"






경찰서를 가면서 너무나 궁금했던 난 강력계 경찰을 대면하자마자 물었다.


왜 훔쳤대요? 왜 자수를 한 거래요?

이사를 가야 하는데 단순 도벽으로 훔친 책이 너무 많아 자수를 했단다. 난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그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책을 훔쳐서라도 봤다는 얘길 듣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다른 답을 들었을 때의 그 허무함이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학문과 지식을 존중한 옛사람들이 배움을 위해 책을 훔치는 것을 관대히 여겨왔던 데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책 도둑은 엄연한 도둑이 맞다. 어쩌면 매겨진 값보다 더한 가치가 있기에 제일 큰 도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에 따르면 광주시립도서관에서는 책을 빌리고 반납하지 않는 회원들에게 독촉장을 보내느라 사용한 우편요금이 년간 1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도서관이라고 어찌 다를까? 대형 서점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난당한 책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우리도 다르지 않아 CCTV를 설치하기도 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은 그저 책이 아니다. 책에는 책의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오래된 책에는 빛바랜 책장만큼 그 책을 보아 온 사람의 흔적과 그보다 더 진한 스토리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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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들어온 책들은 데이터화하기 전에 먼저 점검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난다. 우선, 사람마다 책을 보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펼쳐진 흔적조차 남기고 싶지 않아 아주 깨끗하게 보는 사람도 있고, 그때의 느낌들을 간지나 책의 여백에 깨알같이 적는 사람도 있다. 또한 공감 가는 부분에 밑줄 치며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장 끝을 꾹꾹 눌러 접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 받았다는, 누구에게 전한다는 기록이 있어 그 사연들을 만나면서 책 점검은 길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책을 발견할 때면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의 난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을까.......’ 머릿속에선 소설 한 권이 만들어진다. 비단 책장에 쓰인 기록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바싹 말라 만지기가 무섭게 바스러지는 나뭇잎도 있고 코팅된 책갈피도 있다. 오래전엔 책 속에서 더러 돈이 발견되기도 했었다는데 그도 그럴 것이 친정엄마도 비상금을 책 속에 넣어두셨다가 어느 책인지 몰라 한참을 뒤적이셨던 때가 생각난다. 이러한 이유로 몇 시간이고 쌓여있는 책을 뒤적이다 가시는 손님들도 종종 계셨다 하니 헌책 속엔 책의 내용만 있는 게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중 나의 마음을 적신 것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손편지다.


남편과 나는 결혼기념일에 손편지를 주고받는다. 친구들은 가방을 받았네 보석을 받았네 해외여행을 가네 하며 자랑을 하지만 함께하는 결혼생활인데 일방적인 것은 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값이 나가는 선물을 주고받을 여유는 없다. 대신 무언가 특별한 것을 원했던 난 우리의 결혼기념일 선물로 손편지를 제안했다. 때론 나의 독촉에 결혼기념일 전날까지 곤혹스러워하는 남편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한 치도 물러섬이 없던 난 기어이 손편지를 주고 받는다. 덕분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우리의 결혼생활만큼 편지도 쌓이고 있다.


나에게 있어 손편지는 귀한 보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책과 함께 들어온 편지가 지금은 비록 주인을 잃었지만 책장 속에 넣어질 때만 하더라도 받은 사람에겐 귀한 선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편지들을 그냥 휴지통으로 넣을 순 없었기에 편지가 발견될 때마다 상자에 모아두다가 상자 가득 편지가 쌓이자 서점 한편 에서 <책장 속의 손편지展>을 열기도 했다. 어울리는 나무 액자를 준비해 편지를 넣고 책이 있던 자리에 그 액자를 놓았다. 책 손님으로 왔다가 우연처럼 자신의 편지를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일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콩닥콩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