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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연 May 21. 2020

그 남자를 만나기 전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대학 4년 동안 소개팅이라곤 딱  두 번 해봤다. 첫 번째 소개팅은 대학 1학년 때 학과 선배 언니가 해 줬다. 이과생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첫 번째 소개팅 남은, 키가 크지 않았던 것 외엔 이름도 성도 기억에 없다. 수많은 소개팅 중 유일하게 한 번 이상 만난 사람으로 두 번째 만남에 나를 자신의 고교 야구경기에 데리고 갔다. 야구의 '야'자에도 관심 없던 난, 잘 씹히지도 않는 마른오징어만 씹다가 왔다. 소개팅에 대한 환상이 컸었다. 하지만 내 생과 다름을 깨닫고, 세 번째 만남에서  "어린 왕자'를 물하며 말했다. "우린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두 번째 소개팅은 대학 동기가 해줬다. 동기의 고등학교 선배로, 학과 MT 사진을 보고 나를 소개해 달라고 졸랐던 모양이다. 몇 번의 이야기 끝에 소개팅 자리에 나갔고 다음날 동기는 내게 얘기했다. "야! 소개팅 자리에 세일러복을 입고 오면 어떡해~~~!" 울상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소개팅 남자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의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난 답장 한 번 없이 그것으로 끝.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며 소개팅은 줄을 이었다. 선배들은 하나같이 "넌 내가 소개해주는 사람하고 결혼해야 해!" 하며 내가 내세우는 조건을 들었고, 친구의 시어머니는 내가 맘에 드신다며 선자리를 주선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수많은 소개팅에서 한번 이상 만난 사람은 첫 번째 소개팅 남 뿐.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라는 로 매번 어색한 순간을 모면했을 뿐이다.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소개팅으로 만나는 건 아니다.'였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나의 소개팅 조건은 이러했다.

"키가  커야 하고, 목소리 좋아야 하고, 이름이 예뻐야 해. 참! 착해야 해. 난 착한 사람이 좋아."


소개팅을 마치면 주선자는 기대에 가득 눈으로 물었다. "어땠어?" "는 큰데 목소리가 별로야. 이름이 안 예뻐. 한여름에도 긴 와이셔츠를 입고 툭툭 접어 올린 와이셔츠 아래로 보이는 팔이 예뻐야 하는데 멋이 없었어. 귀가 못생겼."(귀가 못생겼다고 했을 땐 귀까지 보느냐며 직원들 모두 뒤로 나자빠졌었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나의 일관된 대답은, "야! 그놈의 인연 타령 좀 그만해! 인연도 노력해야 하는 거야!"라는 괴변으로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인연은 노력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고, 인연은 자연스럽게 오는 거라고....... 어쩐지 이번 생엔 인연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연은 우연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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