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아이들과의 첫 만남
드디어 그날이 왔다! 두둥!

두 달간의 긴긴 방학을 보내고 새 학교에서의 새 학기를 시작하는 첫날.
(신규도 아닌데, 21년 차인데,,,) 어찌나 긴장이 되고 떨리던지 전날 밤에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하였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말똥말똥 뜨여 있었으니 긴장감의 정도가 무지하게 심했던가보다.
한마디로,
요 상태였던 것.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은 (월요일 같지만) 목요일!
4교시하고 밥 먹여 보내면 된다는 것!
방학중 며칠 출근해서 첫날 ppt도 이미 만들어 놓았고!
하나둘씩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
올해로 초육이(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 담임 맡은 지 10년 차인데 약간은 긴장이 된다.
그래도 다행히 일찍 등교한 여학생들이 그림같이 자리에 앉아서 자기소개 학습지를 열심히 작성하는 모습에 지난밤 꿈(아이들이 모두 격렬히 반항하며 교실이 난리 난리....)이 현실이 아닌 것에 안도했다. 남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점점 시끌시끌해졌지만 일단 눈빛으로만 제압하고 동태를 지켜보았다.
1교시 시업식 때 부임교사 인사가 있어서 방송실로 내려가야 하는데 아이들이 얌전히 잘 있어서 큰 걱정 없이 다녀왔다. 대표로 인사하신 선생님이 엄청 긴장하셨는지(오늘 아침에 갑자기 메신저로 대표 인사하라고 통보받으신 분) 말씀 중에 교회에서 기도하는 끝맺음(아멘~)으로 하셔서 뒤에서 깜짝 놀랐지만 태연하게 표정관리 성공했다. 나중에 대표인사 하신 선생님께서 얼굴이 빨개져서 나도 모르게 교회 기도인사가 나왔다고 민망해하시는데 괜찮다고 위로해 드렸다.
첫인사 마치고 교실로 다시 올라왔다. 첫날이라 간보느라 그런 걸 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시끌시끌하다가도 주어진 활동도 열심히 하고 설명하는 나에게 집중도 잘해주어서 일단은 합격! 하지만 개중에 초육이 특유의 게슴츠레 반항적인 눈으로 째리는 듯 (뭐라고 하는지 어디 보자 라는 눈빛) 관찰하는 듯 쳐다보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쫄지 않고 나도 강렬한 눈빛으로 응수해 주었다.(나 만만한 사람 아니다!)

첫날 무슨 그림책을 읽어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걍 바꾸기 귀찮아서) 작년에 읽어주었던 ‘선생님은 몬스터’를 읽어 주었다. 그림책 제목을 가리고 맞춰보기를 했는데 작년보다 과격한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공룡, 악어, 초록돼지, 도마뱀(보이는 형태에 집중)
-좀비(그냥 관종)
-오스트랄로피테쿠스(지식을 뽐내고 싶었던 아이)
-괴물(영어로 하면 정답!)
-유인원(엥???)
-식인종(설마,, 그런 책이 출판 가능하겠니?)
6학년이라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주는 경험이 오랜만이라 생소했는지, 실감 난 목소리 연기가 통한건지, 아이들은 컴퓨터 화면과 내 얼굴을 이리저리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온 힘을 다해 실감 나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림책 다 읽어주고 나서 ‘서로의 좋은 면 봐주기’, ‘선생님이 몬스터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기’ 약속을 반강제적(?)으로 받아내고 급 마무리했다. 다음 활동으로 고고!
다음으로 눈뭉치 던지기 활동을 했다. 선생님에 대해 궁금한 점을 종이에 적어서 뭉쳐서 앞으로 던지면 내가 주워서 답변해 주는 활동이다. 질문이 10개 연속으로 겹치지 않으면(뻔한 질문 노노) 모두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10개까지 골라 읽었는데 자신의 종이뭉치가 선택되지 않은 아이들이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결국 눈빛을 외면하지 못한 나, 20명 모두의 질문을 다 읽고 답변을 해주었다. 20명의 질문이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진짜! 와우!
<아이들의 재기 발랄 질문 목록>
-선생님은 드라마를 보시나요? 보신다면 무슨 드라마가 제일 좋으시나요?
-게임 좋아하세요? (당돌한 돌직구 질문, 아니 싫어해.)
-선생님은 무서운 선생님이신가요?
-선생님은 전에 학교가 좋아요? 지금 저희 학교가 좋아요? (5년 vs 1일, 비교할 걸 비교하라는 아이들의 원성이 알아서 터져 나왔음.ㅋㅋ)
-수업을 재미있게 해 주실 건가요?
-저희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색/꽃/식물/동물/책 은 무엇인가요?
-선생님 긴 머리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선생님은 피부관리를 어떻게 하시나요?
-선생님 옷 잘 입으시는 것 같아요! 옷 어떻게 이쁘게 입으시는 건가요? (질문점수 획득)
-선생님이 제일 잘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선생님이 교과담임선생님이라면 어떤 과목 선생님을 하고 싶은가요?
-선생님은 왜 스마일쌤이고 우리 반은 왜 스마일반인가요? (응 뒤에서 설명할 거야)
-선생님은 사람이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요?
-선생님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힘들지 않으셨나요?
예의 없거나 개인적인 것을 묻는 질문도 없고 참신한 질문들이 많이 나와서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앞으로 이 아이들과 보낼 하루하루가 기대되기도 했다.

오늘은 친구 인터뷰하기랑 진진가 활동을 간단히 했는데 친구 이름외우기 활동은 내일 더 이어서 해야겠다.
그밖에 첫날 꼭 인지시켜주어야 할 내용들 안내.
1. 스마일반이 왜 스마일 반인지
2. 놀욕때빼험따 하지 않기 약속
3. 어마어마한 양의 가통과 배부물 나눠주고 나니
벌써 4교시 끝~ 점심시간이다~ 야호!
아이들과 식당으로 내려가서 자리 안내하고 같이 밥 먹는데 남자아이들이 갑분 딸기 던지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귀한 딸기를!)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옆에 친구 먹으라고 줬다니 자기도 먹기 싫다고 던졌단다. 그렇게 계속 딸기가 무한 던지기 되고 있었던 상황.
먹기 싫으면 남기던지, 다른 사람 주지 말라고 하고 다시 한번 이렇게 하면 급식판 빼버린다고 조용하지만 낮고 강한 목소리로 으름장 놓고 마무리했다. (강력한 눈빛 발사도 필수)

밥 먹고 바로 집 가지 말고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더니 교실에 얌전히 다들 잘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앞문으로 들어오니 박수와 함성까지 보내준다.(밥 천천히 먹고 온 것뿐인데) 뭐 여하튼 싫진 않네.
오늘 하루 보낸 소감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가도록 했다. (국어 1단원 예습) 예시 문장으로,
‘솜사탕을 먹는 것처럼 달콤했던 하루’,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긴장되었던 하루’를 말했더니
다들 솜사탕과 초콜릿, 사탕,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문장을 만든다.
그것들 제외하고 말하라고 했더니 롤러코스터로 갈아타는 아이들.
그래도 한 여학생이 감동을 주었다.
‘오늘은 6학년 5반이라는 책을 펼쳐 들고 읽는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첫 페이지를 써 나갔는데 내일은 어떤 내용을 써 내려가게 될지 기대됩니다.’
온몸에 감동의 전율이 일었다.
올해도 이 아이들과 함께하며 이런 놀라운 감동의 시간들이 많았으면 하고 바라고 기대한다.
순종과 반항 사이 그 경계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초육이들,
선생님은 너희들과의 만남이 참 반갑고 즐거웠어!
앞으로 친절하지만 단호한 선생님으로, 너희들의 (질풍노도의) 흔들리는 이 시기를 함께 잘 헤쳐나가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고 격려해 줄게.
너희들도 이런 선생님을 믿고 아껴주기를 바라고!
만나서 반가워, 6학년 5반!
앞으로 잘 지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