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 Mar 07. 2024

그러니까 잠이 오지 않아서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

그러니까 한밤 중에 깨서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무척 잘 자는 편이다. 그리고 잠을 잘 자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내가 지금 새벽에 깨서 잠 못 드는 이유는 그러니까 밤수유 때문이다. 두 번째이건만, 이번에는 밤에 수유하고 잘 자리라고 다짐했건만, 한밤 중에 깬 잠은 좀처럼 쉽게 들지 않는다. 특히 1시에서 4시 사이에 깰 때가 가장 고비다. 그 이후에 깨면 그냥 일찍 일어나 버리면 된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든 요가를 하든 모닝 페이지를 쓰든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자야만 하는 시간에 깨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다.


매일 밤수유를 할 때마다 이렇게 잠이 오지 않는 건 아니다. 대부분 비몽사몽으로 수유를 하고 쓰러져 잠이 든다. 다행히 아이도 밤인 걸 아는지 밤에는 눈을 감고 먹고 트림하고 눕히면 그대로 잠을 잔다. 신생아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이 깬 나는 간혹 이렇게 다시 잠들기 힘든 시간을 맞이한다.


낮에 마신 말차라테 때문인가(커피보다 카페인이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유튜브가 내 뇌를 자극했기 때문인가(도파민 중독인가 뭔가 때문에 일부러 핸드폰은 저 멀리 충전기에 꽂아놓고 잠들었는데).


배가 고프기 때문인가(이 시간에 뭘 먹으면 더 잠이 안 올 것이 분명하다).


 이런저런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 희미한 기억들이 끌려 나온다. 그러다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면 어떨까 생각이 미친다. 그러니까 이건 미친 짓이다. 마치 술 마시고 전 연인에게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는 것 같은, 다음 날 이불 킥할 그런 글이다. 이야기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산으로 강으로 미친 듯이 날뛸 것이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감정은 지나치다 못해 고장 난 가습기처럼 뚝뚝 흐를 것이고 새벽의 기억은 실제로 일어난 일과 내 기억 속에서 왜곡된 일과 심지어 깨기 전 꿈에서 있었던 일들이 뒤엉켜 팩트체크에 걸릴 것이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들을 신경 쓰겠는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세상엔 재미있는 것들이 많고, 나는 이렇게 약간의 익명에 기대어 글을 부려놓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그렇기에 부러 이 글을 찾아 읽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쓰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발행하지 않을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일기장에 쏟아놓으면 되는 말들을 왜 공개하려고 하는가.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이 말들을 연재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한밤중에 깨어 잠들지 어떤 이들에게 꿀잠을 선물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 밤에 깨서 누덕누덕 기워진, 그러나 살짝씩 새어 나오는 말랑한 진심이 담긴 글들을 본다면 이야기가 너무 작고 사소해서, 아무런 맥락이 없어서, 무엇보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여서 다시 당신들의 잠 속으로 빠져들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내가 글을 쓰다가 여기까지 하며 다시 잠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브런치는 이 플랫폼이 문을 연 초창기에 시작했지만 연재글은 처음 써보는데 연재 요일을 정해야 해서 목요일을 찍었다. 한주의 정중앙에 자리 잡은 목요일. 아직 금요일이라는 하루를 더 보내야만 하기에 잠들어야만 하는 목요일 밤에 읽기를 바라며. 다시 잠들어야 하는 압박 속에서 쓰는 이 글들이 누군가를 잠들게 하기를.


허나 이 글들은 시차를 두고 띄워질 것이다.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다. 내가 한밤중에 쓴 글들이 시차를 두고 누군가가 읽을 것이다. 부끄러운 이 글들은 한번 우체통에 넣으면 되돌릴 수 없는 편지처럼 이 연재를 삭제하지 않는 한 남을 것이다. 수정은 가능하겠지만 가급적 연재 중에 발행되고 난 후에 수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들은 그런 부끄럽고 말랑한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이니까.


혹시 연재가 중단된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사람이 한밤중에 잘 자고 있다고 생각하며 기뻐해주시기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