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가벼워지는 연습
‘아니 이런 걸 평소에 들고 다닌다고? 이게 갑자기 가방 안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이것저것 물건을 이고 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부상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문제는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물건만 가볍게 챙겨 돌아다니는 여행자를 꿈꾸지만, 현실의 나는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히는 보부상이다.
문을 나서는 순간, 바깥은 모든 가능성이 열린 세계가 된다. 그날의 하루가 어떤 색으로 채워질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가능성은 망설임의 순간으로 이어진다. 아침에 소설을 읽었지만 밖에 나가면 갑자기 잠언집이 읽고 싶어 질지 모른다. 아니 책을 펼칠 짬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약속한 장소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면? 평소보다 빨리 점심을 먹게 되면. 예기치 못한 짬이 생기면 마음껏 여유를 부리고 싶어진다. 이런 생각으로 책을 두 세권 챙긴다.
이런 변수들과 별개로, 마음의 안정을 위한 부적 같은 물건들도 있다. 노트와 필기구, 선크림, 쿠션, 발색이 나는 립밤. 사실 나는 밖에서는 거의 글을 쓰지 못한다. 카페에 혼자 앉아 있으면 타인들의 대화가 증폭되어 집중하기 힘들다. 타인과 한 공간에 있으면서 투명한 유리벽을 치고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 나에게 질문하고 답하며 글 쓸 집중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익숙한 공간이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하면서 밖에 나갈 때면 노트와 쓸 만한 무언가를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이 정도만 챙겨도 벌써 백팩이나 크로스백을 들어야 한다. 가방의 크기는 가능성의 크기다. 그 가방에 맞춰 필수적인 마음의 안정템 외에 다른 물건들도 챙기기 시작한다. 요컨대 나는 가방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어한다.
이런 나의 성향은 이미 알고리즘에게도 들켰다. '작지만 수납력이 뛰어난 가방' 광고가 계속 뜨기 시작했다. “손바닥 만한 가방에 이게 다 들어간다고?”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가방을 펼치고 책상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넣어 가볍게 휙 걸치고 화면 밖으로 사라지는 영상을 마치 신이 내린 계시라도 되는 양 반복해서 보고 또 본다.
결국 나는 '여행자들을 위한 가방 브랜드'라는 곳에서 가방 하나를 주문한다. A5 노트와 웬만한 책이 들어가도록 만든 '읽고 쓰는 사람'을 위한 가방이다. 여행을 하려면 무게도 중요하기 때문에 가벼운 나일론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나는 이 가방을 데일리백으로 쓸 것이다.
이런 질문들이 내 앞에 떠올랐다.
나는 왜 가벼운 가방을 참을 수 없어하는가?
왜 모든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가?
왜 나는 어제도, 오늘도 같은 삶의 패턴에 묶여 있는가?
얼마 전, 나는 서른아홉 번째 생일을 맞았다. 태어난 곳에서 붙박인 듯 살아온 세월과, 그곳을 박차고 나와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좋다는 식으로 살아온 시간의 물리적 길이가 같아졌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지금 여기에서 작은 것부터 실행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가볍게 집 밖을 나가보는 거다.
오늘 하루가 꼭 완벽할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이것들 다 넣어간다고 해서 그게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가볍게 나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