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딜레마
우울감이 찾아오면 자꾸만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나는 지금 여기 왜 있는 거지?'라는 질문에 도착한다. 한마디로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거지?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가 누군가 "왜 사는가?"라고 묻는다면 그제야 이유를 찾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이 다 이유가 될 수 있다.
우울할 때는 나 자신에서 기인하는 이유가 큰 동력을 얻지 못한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안 먹어도 그만이고 애초에 좋아한다는 감정이 뭐였는지 잊어버린 느낌이다. 예전에 좋아하던 것마저도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셈이다.
다행히도 나에게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쉽게 밝히지 못한다고 한다.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다. '나 요즘 우울해'라고 말하는 것과 '우울증이야'라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한다.
요즘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것이다. 마음의 병이고 치료하면 고칠 수 있다.'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지금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행히 나를 탓하거나 괴물 보듯이 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힘들다면 다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 말에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입으로 말하고 글로 써본들 내 안에서 믿고 있지 않으니 당장은 소용이 없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존재, 주변 사람들의 말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춰준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본다. 아직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내 안에서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보기로 한다.
좋아하는 것은 생각나지 않지만 싫은 것은 생각할 수 있다. 나의 우울이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내 우울이 전시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일단 거기에 기대보기로 한다. 여러가지 모습과 형태로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