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합니다. 우울증인가 봅니다.

우울증을 인정하기

by 나날

지난 며칠간 내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이 감정과 생각의 흐름이 바로 '우울'이라는 걸 깨달았다. 단순한 우울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것도 인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진 않는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내 생각이 제멋대로 흘러가 다시 우울해지는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막을 방법도 딱히 없다.


그럼에도 그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생각의 흐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울한 사람들은 사고의 패턴이 어떤지 일단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이 시기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며 일단 지나가고 나면 거기에 무언가 있었나 싶게 흔적도 찾기 어려워질 것을 알고 있기에. 죽을 만큼 힘들었던 감정의 고리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었는지도 잊힌다. 지난밤 꿈을 아침에 일어나 되짚어보는 것처럼 도저히 실마리나 길목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었다. 악순환의 고리가.


증상 하나. 어떤 인풋도 예전처럼 흡수가 되지 않는다.

음악을 들어도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거기엔 말도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모든 것이 다 이상하다. 어제까지 딛고 있던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처음부터 모두 말도 안 되고 이상한데 사람들은 거기에 박수를 보내고 즐거워한다. 마치 트루먼쇼의 트루먼이 된 것 같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매우 연약하고 불확실한 기반 위에 흔들리듯 올라가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영화 기생충을 다시 보았다. 작년에 분명 재미있게 본 영화 중 하나다. 다시 보니 영화 시작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것도 현실감이 없었다.


실은 아카데미라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아카데미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이상하게 보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은 그대로 산적해 있는데 허구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고 거기에 참여한 일부 사람들이 상을 주고 감격하고 즐거워하고 박수와 인정을 보낸다. 그들은 인류의 대표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마치 선택받은 사람들인 것처럼 좋은 옷을 입고 웃음을 지으며 마치 대단한 것을 성취한 것처럼 박수를 친다. 무엇을 성취한 것인가. 무엇을 바꾼 것인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일부 사람들이, 극히 일부 사람들이 일부를 위해 만들어 놓은 "아카데미"라는 상 혹은 축제를 거기에 끼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그 모습을 시청하고 함께 기뻐하고 성과를 이야기한다. 비관, 비판의 신호등이 켜졌기 때문에 모든 게 다 이상해 보이나 보다. 실은 모두를 위한 축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에 말을 보태고 퍼뜨리면서 바로 그 상에 권위라는 것을 부여해주고 있는 상황이 어딘가 이상하다. 아카데미는 하나의 예일뿐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모든 시스템이 다 이상해 보인다.


다시 영화 기생충 이야기로 돌아오면, 영화의 이야기는 친구에게 부잣집 과외를 부탁받으면서 시작한다. 현실로 돌아오면 이것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이유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전 인터뷰를 보니 손석희 아나운서가 봉준호 감독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뉘앙스로 답했다.

"이야기의 초반에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인과관계가 생기면서 선택과 가능성의 폭이 좁아질 수 있지만 시작할 때는 열어 놓고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 우울의 원인과 결과가 있다. 나는 지금 일말의 가능성을 열어 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가능성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 가능성의 다른 말은 "희망"일 것이다. 가능성을 열어 놓지 못하니 어떤 것도 그 위에 올려놓거나 뒤에 덧붙이질 못하고 있다. 말도 안 되지만 일단 열어 놓고 생각하는 것. 그게 도움이 될까. 아직 우울의 늪에 빠져있는 나는 당장은 그 가능성을 붙잡을 힘이 없다. 하지만 일단 열쇠로 남겨 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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