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불안에서 시작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오늘도 읽는 나

by 나날

삶과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불안이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안을 안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일지라도 뱃속과 너무 다른 외부 환경에 불안을 느낀다. 자아와 외부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하면 내안의 욕망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고, 동시에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자아와 환경 때문에 불안해진다. 작은 불안이 존재 자체를 흔들기도 한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는 느낌. 어디론가 숨고 싶지만 숨을 곳 하나 없는 그런 느낌.


우리는 불안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붙들려고 한다. 그렇게 붙든 어떤 것이 중독이 되기도 한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


이 중독을 두가지로 나눠보고 싶다. 하면 할 수록 더욱 불안해지는 것과 하면서 불안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매우 사소할 수 있지만, 오늘의 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이런 경험을 했다.


요즘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진다. 손에 뭐라도 잡고 있거나 눈이나 귀가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따라가고 있어야 그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든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어디선가 불안이라는 탈을 쓴 감정의 기포들이 올라온다.


그럴 때,

자리에 벌러덩 눕는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 유튜브를 켠다. 각종 영상 썸네일들을 스크롤한다. 그 중 눈에 들어오는 한 영상을 터치한다. 그 영상이 끝나면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넘어간 영상이 시작되자 마자 다음에 볼 영상을 찾는다. 영상이 진행되는 중에도 스크롤을 내려 댓글을 확인하거나 다음에 볼 영상을 미리 점찍어 둔다.

이러다 보면 시간이 몇 시간이든 훅 지나간다. 잠들기 전에 손에 쥐었다면 피곤하고 눈이 감기고 있음에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자꾸만 다음, 그 다음을 찾고 정작 보고 있는 영상에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결국 영상을 틀어놓은 채로 핸드폰을 머리 옆에 두고 어느 순간 잠이 든다.


이런 패턴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 자꾸만 더 불안 때문에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영상을 보면서 불안을 떨쳐낼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아니었다. 불안에 잠긴 나는 영상 자체에 집중하질 못했다. 영상을 보면서도 끝날 것이 두려워 다음 영상을 찾는 행위 사이에 불안이 증폭되고 있었다.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불안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책을 손에 들었다.

불안한 상태에서 책을 읽을 때 스스로에게 이런 주문을 외운다.

"나는 이 책을 언제든 그만 읽을 수 있다."

자아통제감을 갖는 것이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살짝 숨쉴 틈을 주는 것이다. 유튜브 영상을 언제든 그만 볼 수 있다고 하는 것보다 나에겐 조금 더 쉬운 일이다.


책을 읽으려 할 때, 몇가지 마음의 벽이 있다. 바로 책은 잠깐 잠깐 읽을 수 없고 집중할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 그래서 잠깐의 시간이 주어지면 책을 펼치기 보다 포탈 뉴스를 검색한다. 뉴스는 짧고 읽다 그만 둬도 상관없으니까. 이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내가 불안하지 않다면. 하지만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른게 필요하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어젯밤 잠자기 전에 나는 짧은 이야기를 읽었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는 조급함도 없었고 그냥 내 속도로 그 이야기를 따라갔다. 집중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만큼만 이야기를 따라가려고 했다. 지금 손에 든 이야기를 당장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끝에 닿을 수 있으니까.


이 행위를 통해 불안감을 조금 떨칠 수 있었다. 이야기는 내게 불안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왜 나에게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각자 조금씩 다른 불안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나 역시 내가 오늘 마주한 불안을 들여다보며 한발짝 나갈 수밖에 없다.


나에게 불안은 책을 읽게하는 마음의 상태로 작용한다. 중독은 불안에서 시작한다. 어떤 중독은 불안을 조금 가라앉히고 나를 들여다 보게 한다. 나에겐 그게 책이고 글이고 이야기이고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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