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회 편>
평범한 삶이 가져다주는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전업주부의 삶 속에서 나는 점점 병들어 갔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모든 것들이 산후 우울증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돌이 되자마자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겼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였지만, 나는 좋은 영향을 주는 엄마가 아니라는 무력감에 어린이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 무렵 어린이집 사고가 빈번히 뉴스에 보도되던 시기였지만, 저는 아이를 데리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목욕을 시키면서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나이였던 아이 몸이 괜찮은지 샅샅이 훑으면서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아이를 끌어다 어린이집에 놓았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했는지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렇게 알량한 해방감과 무식한 걱정 속에서 나를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교육을 듣고 자격증을 취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견딜 만 해졌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지나 보니 우울증의 한 증세였던 겁니다.
그렇게 아이가 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독서미술지도 강사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에 일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남편에게 알리기 위해 저녁 시간을 기다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먼저 저에게 알려온 소식은 저를 무너지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남편의 지방 발령 소식에 저와 남편은 한참을 말없이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 저의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두 살이 넘은 아이를 키우는 부부로써 배우자의 지방 발령은 커다란 난관임이 분명했습니다.
더군다나 두 달 만에 남편은 발령지로 가야 했습니다.
남편의 수입이 주소득원이었기 때문에 발령지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두 달 만에 재취업은 너무 리스크가 컸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남편만 이동할지 가족이 함께 할지 저는 고민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따라가지 않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고는 매우 실망했습니다.
친정부모님과 친구들을 모두 떠나 남편을 떠나는 것이 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기회를 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기회로 창출되는 소득과 남편의 소득을 비교하기에는 터무니없었습니다.
제 취업이 가족의 이별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결국 두 달의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갔고, 남편은 계획대로 지방으로 떠났습니다.
저는 외로웠고, 홀로 아이를 감당하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면서 우울감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지방으로 떠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실 나 준비하던 취업이 결정되었어. 난 이번에는 꼭 일하고 싶어. 대신 당신이 포기해 주면 안 될까?"
저의 의견에 남편의 망설임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바로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다시 서울로 복귀할 준비를 했습니다.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저의 불투명한 기회라는 열차에 같이 탑승하기로 결정한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굳게 마음을 먹고 남편이 포기하지 않더라도 나의 의견을 밀고 나갈 생각이었습니다.
결코 남편을 시험하려는 생각이 아니었지만, 남편의 행동에 이성적으로 상황을 고려해 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나의 기회(또는 재취업)라고 포장된 이기심 속에서 무엇을 잃어버릴 수 있는지를 밤새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뜬 눈으로 고민하고 아침에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당신 따라갈게."
남편은 정말 깊게 고민한 게 맞냐고 몇 번을 물었습니다.
저는 이번엔 남편이 성장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기회를 걷어차버리고 서울의 모든 것을 정리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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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