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기회

<첫 번째 기회 편>

by 초과 근무


결혼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오니,

너무 감사하게도 허니문 베이비로 아이가 바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기꺼이 맞이하기란 어려웠습니다.

우선 정신은 둘째치고 몸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임신이 되고 한 달 뒤에 조산기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병원에 입원하고 다시 회사를 가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피가 새어 나왔습니다.


(저는 전 회사를 퇴사한 후, 새로운 회사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 이때부터 결혼하면 일을 안 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모순이 많은 여자였던 것입니다.)


저는 어린 마음에 아이를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새로 회사를 들어갔으니 당연히 욕심이 생겼습니다. (정규직 입사였죠)

아이가 생겼다고 말도 못 할뿐더러, 그런 일로 민폐를 끼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하늘에서 주신 것이니, 내가 용을 쓴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생명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더 소중하다는 것을....


하지만, 친정어머니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미 어머니로서 살아오신 경험자로써 한 생명을 놓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가슴에 묻히는 일인지 내 자식에게만큼은 알게 하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알았습니다.

그렇게 강제로 어머니 손에 이끌려 회사는 나중에 다시 들어가면 되는 것이라는 말씀에...

철없던 저는 드디어 회사를 그만두라는 부모님 말씀에 기분이 좋았던 듯합니다.

가훈처럼 일을 계속하길 원하시는 부모님께서 먼저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셨으니 말이죠.


(저는 사실 회사를 다닐 때 너무 가기 싫어서 침대에서 떨어지는 일을 시시때때로 시행하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이 부러지면 회사에서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에 팔을 어떻게 부러뜨리겠다며 침대에서 옆으로 수차레 굴러 떨어졌었죠. 다리는 부러져도 회사에서 일을 잘할 수 있겠더라고요. 이런 저를 봐도 부모님은 절대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고 하셨던 분입니다.)


그렇게 회사에 다시 사표를 던지고 병원에 한 달을 산 송장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사실 병원에서도 포기했던 상태였습니다. 엉덩이는 주사를 너무 맞아서 피부 성질이 변해 있었죠.

퇴원 후에는 다시 집에서 한 달을 누워만 지냈습니다.


그렇게 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서 안정기에 들어갔습니다.

임신한 지 4개월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외할머니가 지켜낸 아이는 무사히 제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임신기간 10개월 내내 일을 포기하고 낳은 아이여서 그런지 산후 우울증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대신에 저는 아이를 잃은 거대한 슬픔을 무사히 피해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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