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10년 차 경단녀의 뻔뻔한 성공 수기
오늘 첫 출근을 하였습니다.
나의 이름 석자가 있고, 나의 지정 자리가 있으며, 나의 업무가 있는 직장이 생겼습니다.
너무 신이 나서 첫 출근임에도 불구하고 긴장은 커녕 가슴이 벌렁벌렁 했습니다.
정확히는 12년 만에 제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경단녀에서 탈출하였습니다.
결혼, 출산, 육아, 남편 발령 등 제가 취업할 수 없는 수많은 주변 환경들을 겪으면서 우울증의 늪까지 건너왔습니다. 변변찮은 학벌과 경력을 가지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 보고자 합니다.
저의 이야기는 주변 어디에나 있는 수많은 경단녀들과 혹은 경단녀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아쉽게도 저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은 없었지만, 저라는 인간 하나는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간절했습니다. 그 마음하나가 여기까지 무너지지 않고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지 않았나 합니다.
이제는 저 외에 한 사람을 더 책임을 지고 싶기에 또 다른 졸업장을 받으러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전에 경단녀의 졸업장 이야기를 PART1으로 먼저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 하나를 먹여 살리겠다는 빈말조차 하지 않았던 남편과 독립을 두려워하는 자식에게 영광을 돌리며, 반품은 안된다고 못 박아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해 봅니다.
[PART1]
결혼은 되고, 퇴사는 안된다
이 대사는 저희 집 인생 2회 차 가훈입니다.
회사일로 힘들 때마다 귀에 박히는 가시 같은 말이었습니다.
경기도권 대학 졸업장으로는 정규직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허세 가득한 계약직 신분으로 위장된 은행원이 저의 첫 경력이 되었습니다.
정규직 전환에 두 번 정도 물을 먹고 나니 모든 것에 신물이 나버렸습니다.
능력이 아니라 정치질로 평가받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독립군처럼 당당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저는 어느덧 직장에서 돈키호테의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뚤어진 n연차 계약직이 저의 정확한 현주소였습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다른 길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좀 더 해서 학위를 바꾸면 보다 탄탄해진 길로 걸어갔을까요?
아니면 국가고시 공부를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재수와 편입까지 경험해 본 나란 인간은 그 길에서 스스로를 믿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퇴사는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 말씀을 지켜드리고자 결혼으로 정규직 전환을 택했습니다.
저는 도망치듯이 결혼했고 결국 회사를 퇴사하고 부모님에게서도 퇴사하였습니다.
순식간에 인생 2회 차 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멍청하게도 던져 버린 건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