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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Feb 16. 2024

나의 치앙마이 루틴

한 달 살기 하러 와서까지 루틴?

느긋해지고 싶어서 떠나온 한 달 살기이지만 어느 정도의 루틴이 없으면 너무 루즈해질 것 같아서 나름의 루틴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내가 너무 강박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집에 가는 비행기 안에서 후회할만한 것들을 상상해 보니 나에게는 역시 루틴이 있는 게 낫겠다 싶었다.


처음 열흘정도는 6시에 일어났으나 요즘은 20분 정도 미적대다 일어나고 있다. 출근할 때는 '아.. 가기 싫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겹게 일어나곤 했었는데 지금은 기분 좋게, 오늘 하루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일어난다는 게 가장 좋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무너져있는 건강과 체력을 챙겨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건강에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 규칙적인 운동과 건강하고 적당한 양의 음식을 먹는 것에 특히 노력해 보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1등이다. 헬스장에도 항상 오는 사람들이 각자의 루틴에 맞춰 정해진 시간에 오는 게 재미있다. 항상 외국인 커플이 와서 운동하고 있고 그다음이 나였는데, 오늘은 주말이어서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 아직은 어둑어둑한 새벽에 나와서 운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 꽤나 멋져 보이고 뿌듯한 느낌이 든다.


헬스장을 둘러싸고 있는 콘도 건물들을 바라보면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그걸 보면서 뭔가 남들 자고 있을 때 나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라는 우월감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그딴 생각 좀 집어치우자..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각자의 생활방식과 행복이 있는 것이지 왜 그리 자꾸 비교하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끼는지.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하는 것과 행복한 단잠을 실컷 즐기는 것의 우월함을 어떻게 가릴 것이며 그걸 왜 가리려고 하는가.


한국에서 나에게 헬스장은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들러 유튜브를 보면서 설렁설렁 러닝머신을 걸으며 이거라도 한 게 어디냐며 만족하던..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자기 전 샤워할 겸 들리던 곳일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곳에서는 러닝머신, 사이클, 그리고 근력운동기구로 한 시간 운동을 꽉 채운다. 트레드밀(러닝머신)에 경사도 주고 달리기도 한다. 헬스장에서 나도 땀을 흘릴 수가 있구나, 땀 흘리는 내 모습이 새롭다.


공복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운동을 하고 숙소에 들어가서 아침밥을 먹는다

새벽에 쿠팡로켓배송으로 도착한 핫도그, 주먹밥 등을 돌려먹으면서 출근하고 매일 인스턴트, 밀가루를 입에 물고 살던 내가... 음식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요즘 건강식을 먹으려고 애쓰고 있다. 뭐 하나에 꽂히면 급발진하다가 싫증을 내는 경향이 있어서 겁나기도 하는데 일단 지금까지는 질려하지 않고 맛있게 건강하게 잘 먹고 있다. 과일, 샐러드로 아침식사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상상도 못 했던 나인데, 그렇게 먹어도 생각보다 든든하고 왠지 몸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항상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미루고 방치해 왔었던 '나의 건강'이 챙김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아침을 먹은 후 오전 시간은 로비에 작은 라이브러리, 북카페 같은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책 읽으면서 끄적끄적 메모하고 일기 쓰고.. 그렇게 차분한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돈만 내고 읽지 않던 밀리의 서재 본전을 찾고 있는 중이다. 주로 심리학, 인문학.  여행에세이, 자기 계발.. 이런 책들을 담아두고 읽고 있다.

시장에서 사온 치킨 라이스 무려 1800원

점심을 먹어야 한다. 가까운 쇼핑몰 푸드코트에 가서 먹고 오기도 하고, 전날 시장 가서 사다 놓은 걸 먹기도, 배달시켜 먹기도 한다. 배달의 민족이 여기 또 있었다. 웬만한 맛집들도 모두 배달로 주문이 가능하고 배달도 정말 빠르고 배달비도 몇백 원에서 천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 밥에 대한 걱정이 없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풀장 선베드에서 시간을 주로 보낸다. 책 읽고 수영을 한바탕 한다. 치앙마이 그리고 이 콘도를 선택한 이유 중 8할은 이 수영장 때문이었는데 너무 만족스럽다 이렇게 긴 수영장은 처음. 심지어 사람도 별로 없어서 혼자 전세 낸 것처럼 수영을 즐기고 있다.. 보통은 이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숙소나 라이브러리에서 블로그도 하고 글을 끄적끄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별거하는 거 없는 것 같은데도 하루가 어찌나 금방 가는지.

메뉴 2개 배달비까지 8300원

금요일은 치앙마이 치팅데이! 평소에는 점심을 늦게 먹고 저녁은 먹지 않거나 아주 가볍게 먹는 걸로 하되 금요일은 먹고 싶은 거 맘껏 먹기 with 맥주! 치앙마이 치킨 맛집으로 유명한 위치안부리 치킨과 쏨땀을 주문했다.

치맥을 간단히 한 후 또다시 선베드에 누워서 휴식 시간을 가진다. 회사 다닐 때 그토록 하고 싶었던 ' 혼자 조용한 데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책이나 실컷 보고 싶다'를 맘껏 실천하고 있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가장 그리워할 것 같은 순간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자기 전에는 클래스 101 쌤들과 함께 요가와 명상을 하기도 한다. 피곤해서 스킵하는 날도 많긴 하다.


별거 아니지만 바쁘게 살면서 하기 힘들었던 것들을 실컷 하면서 즐겁게 한달살기 하고 있다. 루틴이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나의 경우에는 루틴을 정해놓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하니깐 무기력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이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치앙마이 오길 잘했다 싶어서 다행이다.

이렇게 지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옆 동네로 마실을 가거나 투어를 간다. 벌써부터 그리운 치앙마이 한달살기, 아쉬움 없도록 남은 시간도 잘 살아볼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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