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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Feb 21. 2024

나의 여행은 진짜 자유여행일까?

도이수텝 투어 홍보 문구로부터 자각하다

느긋하게 보내고 있는 치앙마이 한달살기. 올드타운에서 약간 외곽에 위치해있는 동네에 머물고 있는지라 (그래봤자 6km) 일주일에 두번정도만 외출을 하고 있다. 마치 회사다닐때 주말에 뭐할지 생각하면서 설레였던 것처럼 이번주에는 어디 가서 뭐 먹을까? 어떤 투어를 한번 해볼까? 하면서. 여행속 여행을 즐기고 있다. 여행앱을 켜고 치앙마이를 검색하면 뜨는 투어를 쭉 한번 살펴본다.


"도이수텝을 보지 않으면 치앙마이에 왔다고 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안그래도 갈까말까 고민하고 있는 도이수텝+왓우몽 야간 투어 상품이다.

태국은 좋아하지만 태국의 상징이라할 수 있는 황금빛 사원과 코끼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워낙 다양한 사원들이 도심 곳곳에 있고 그렇게 오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한번 쓰윽 들어가서 둘러보면 그걸로 충분하다. 예의상 검색해서(안할때도 있다) 그 사원과 관련된 스토리를 한번 보고는 '아, 그렇구나~ 맛있는거 먹으러가야지~'라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사원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간절하게 염원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할때는 있다. 어떤 기도를 저렇게 하고 있는걸까? 내가 간절히 염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사원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코끼리도 마찬가지이다. 100바트짜리 코끼리 바지는 시원하고 편해서 좋아한다.


그렇기에 '치앙마이에서 해야할 것'에 포함되어 있는 사원 투어, 코끼리 보호구역, 코끼리 목욕시키기 체험.. 이런 액티비티를 보면 난 하기 싫은데, 왜 '해야할 것'이라고 표현하는거야. 안하는 사람 괜히 찜찜하게..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 안당기는데.. 고민 끝에 '갈까 말까 고민될때는 가라'라는 말이 생각나면서, 아 모르겠다. 그냥 남들이 하라는데, 좋다는데 가보자. 가격도 2만원인데 뭐. 라면서 도이수텝 야간 투어를 결제 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 문구가 생각난다.


"도이수텝을 보지 않으면 치앙마이에 왔다고 할 수 없습니다"


2001년 유럽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기저기 자유여행을 꽤나 많이 다녔었다. 그런데'내가 그동안 자유여행을 한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내 마음대로 하는'이라는 의미의 자유여행 말이다. 론니플래닛과 같은 두꺼운 여행책을 들고 다니던 시절부터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여행하기 세상 편해진 요즘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나는 보이지는 않지만 짜여진 여행 스케쥴대로 움직였던거 아닐까? 그게 패키지 여행이랑 크게 다를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 많은 리뷰를 보고, 비교하고.. 하도 많이 봐서 여행지에 도착하면 익숙한 느낌 마저 든다. 정작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인데도 '남들도 다 하니깐', '해봐야한다고 하니깐' 라면서 하는 것들도 얼마나 많았었나.


000에 가면 해야하는 것, 먹어야 하는 것, 사야하는 것.


참고는 하되 내 취향이 아니면 과감히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고 싶어서 하는 여행인데 왜 정작 본인은 원하지 않으면서 남들 말에 휩쓸려 다니는건데? 이런 새삼스러운 생각이 놀라웠고 그동안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랐다.


두꺼운 여행 책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다. 책 분량을 채우기 위해 그 동네의 온갖 교회, 성당, 국회의사당과 같은 곳들에 별 세개 이상 표시를 해 놓은 곳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곳들이 별로 안 궁금하고 가기 싫었는데 뭔가 미션을 클리어해야하다는 강박을 가지고 걸음을 재촉하면서 종종거리면서 다녔던 적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투두리스트 하나에 선을 쫙 그은 듯한 느낌으로 뿌듯함을 느끼곤 했었다.


당장 도이수텝 투어를 취소했다.


도이수텝은 가지 않았지만 나는 치앙마이에 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있는 치앙마이의 일상은 더할나위없이 충분.


매일 이어지는 화창한 날씨, 내가 가진 돈의 가치가 갑자기 3배정도 뻥튀기 되어 나를 약간의 부자로 느끼게 해주는 저렴한 물가, 콘도의 호화로운 수영장에서 받는 개인 수영 레슨. 아침 일찍 수영장 뷰를 바라보면서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 한번씩 다녀오는 요가, 줌바와 같은 원데이 클래스, 활기찬 시장에 가서 밥을 먹고 신선한 과일을 맘껏 사다 먹는 것도. 사원과 코끼리는 없어도 벌써부터 그리운 행복한 치앙마이 생활이다.


도이수텝 투어를 취소하는데 트래킹 투어 하나 눈에 띄었다.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등산을 꽤 좋아하지만 못간지 오래되서 안그래도 날 따뜻해지면 등산가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치앙마이에서 등산이라.. 이거는 나 하고 싶은데?

그렇게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도이인타논 트래킹 투어를 신청했다.

'약간 수락산 같기도 하고, 짧은 여행 일정이라면 굳이 시간내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라는 리뷰가 보인다.

상관없다. 그건 그의 생각이고 내가 하고싶은 거니깐 그냥 해보면 된다.


이렇게 진짜 자유여행, 자유인생을 향한 한 걸음을 떼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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