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갑자기 로또를 샀을까

100일 글쓰기 챌린지 - 32일차

by 혜봄

나는 로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걸 왜 사지? 돈을 바닥에 버리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었다.


그랬던 내가, 어제 로또를 샀다. 무려 다섯 장이나.
내 손으로, 직접, 자동으로. 복권파는 가게에 들어가는데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마치 처음 담배 사는 고등학생처럼. 이게 뭐라고 이렇게 쑥스럽지?


그 시작은 아주 리얼한 똥꿈이었다.

듣는(읽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정말 생생하게 꿨다.
변기에서 넘쳐흐르는.. 아, 이건 진짜 너무 리얼하다 못해 내가 잠결에 실수를 한건 아닌지

이불을 걱정했을 정도였다.

기이한 기분으로 눈을 떴고, 그 기분은 하루 종일 계속됐다.
이건 아무래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싶어 인터넷에 ‘똥 꿈 해몽’이라고 쳐봤다.
그랬더니 나오는 해석이 이거다.
“재물운이 들어오는 꿈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재물운이라… 지금 내 통장을 보면 그 말이 제일 농담 같네.’
순간 로또가 떠올랐다. "재물운이라면 기대해볼 수 있는건 로또뿐이지 않나?"


그런데 진짜 신기한 건 그 다음이었다.
로또 용지를 받아 들고 나오는 길. 갑자기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 거다.
‘이거 진짜 되면 어떡하지?’
‘아… 남편한테는 말해야겠지? 그래도 친구들이나 가족한텐 절대 비밀로 해야겠다.’
‘당첨되면 1등은 얼마지? 20억? 세금 떼면 한 14억쯤 되려나?’

숫자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일단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생각해봐야겠고,

다음으로는 지금 가지고 있는 조그만 아파트를 팔고 더 넓은 평수로 갈아타고 ...
아, 우선 일은 좀 쉬자. 일단 한 달은 푹 쉬어야지.
유럽? 아니, 발리? 어디든 좋다.

이런 상상을 하는 내가 좀 우습기도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로또 사는 사람들 보면 한심해.”
그랬던 내가 지금, 이 종이 한장을 쥐고 미래를 그리고 있다.

친구가 예전에 말했던 게 생각났다.
“로또는 희망을 사는 거야. 일주일 동안 뭔가 기대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아.”
그 말, 그땐 반쯤 흘려들었는데

지금은 백 퍼센트 이해된다.

로또를 샀다고 해서
내 인생이 갑자기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작은 기대만으로도 이번주 로또 추첨때까지 남은 이틀 동안은 확실히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는 조금은 부풀어있는 마음으로 살아볼 생각이다. 그때가서 꺼질때 꺼지더라도.


누가 알아. 어쩌면 이 똥꿈, 진짜 맞아떨어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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