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건너, 마음이 닿은 곳

여행의 습작 #8. 라오스 방비엥으로 향한 17시간의 여정

by 미나래

1.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계

태국 카오산로드의 마지막 밤, 덥고 끈적한 공기를 가르며 우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배낭은 몸집만큼 커 보였고, 그 안에는 옷과 물건보다 설렘과 두려움이 더 가득했다.

인천공항에서도, 방콕에서도 라오스 돈 ‘낍’을 구하지 못했다.
“가보면 되겠지.”

무모한 위로로 마음을 다잡았지만, 머릿속엔 ‘혹시 아이들과 국경에서 발이 묶이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쌓였다.

농카이역에 도착한 후, 기차에서 버스로 갈아타며 이어진 국경 여정은 마치 ‘믿음의 다리’를 건너는 시간이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언어도, 냄새도, 공기도.


2. 낯선 나라의 친절

입국 심사장 앞에서 서성일 때, 라오스 기사 아저씨가 내 어깨를 톡 치며 말했다.
“괜찮아요. 내가 도와줄게요.”

그는 우리가 환전소를 찾을 때까지 함께 걸었고, ATM 사용법을 알려주었으며, 입국 수수료 5바트를 대신 내주었다.
그의 손에서 건네받은 작은 낍 한 뭉치가 그날의 불안보다 훨씬 따뜻했다.

그 순간, 낯선 나라의 온기가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3. 버스 안에서 피어난 인연

라오스 국경을 통과한 버스 안, 내 옆자리에서 태국 여학생이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나 한국 좋아해요.”
서툰 한국어로 내뱉는 그 한마디에 웃음이 났다.

그녀의 이름은 쏘씨.

함께 있던 친구들과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휴게소에서 우리가 메뉴판 앞에서 망설이자 쏘씨는 매운 음식 대신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골라줬다.
그녀의 손짓 하나, 웃음 하나가 피곤한 여정 속에서 나를 조금씩 풀어주었다.


4. 몸은 지쳐도 마음은 채워졌다

기차 9시간, 터미널 2시간, 버스 6시간.

17시간의 여정 끝에 방비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고,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그때, 쏘씨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았다.
“엄마, 괜찮아요? 나랑 같이 가요.”
그녀가 나를 ‘엄마’라 부르는 순간, 모든 긴장이 풀려버렸다.

그녀는 우리 숙소 위치를 물어가며 끝까지 안내했고, 그날 저녁엔 오히려 우리가 대접받았다.
쏘씨의 아버지는 따뜻한 타이요리를 사오고, “숙소 가서 먹어요.”라며 또띠야 한 봉지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식탁 위엔 음식보다 더 진한 ‘배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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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블루라군의 웃음

다음 날 아침, 쏘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블루라군 갈 건데, 같이 가요.”

뚝뚝이는 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덜컹거리는 길 위에서 아이들과 쏘씨 일행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로를 잊었다.

블루라군 3의 물빛은 비취처럼 맑았다.
햇살이 수면 위로 흩어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번져갔다.

그 순간, 이 모든 여정이 ‘힘듦’이 아니라 ‘선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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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한다

밤이 내려앉은 방비엥의 숙소, 아이들은 물놀이의 피로에 일기를 쓰다 잠들었다.
“엄마는 진짜 여행 인연 운이 있어.”
률양이 남긴 그 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하는가 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의 친절을 만나고, 세상이 여전히 다정하다는 걸
다시 믿게 되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갔지만, 사실 내가 건넌 건 ‘마음의 다리’였다.
라오스의 바람,
쏘씨의 미소,
그리고 그들이 건네준 또띠야 한 봉지.
그것들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가장 따뜻한 여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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