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비엥의 마지막 밤, 마음이 익어가던 시간

여행의 습작 #9. 방비엥의 마지막 밤, 다정함을 배우다

by 미나래

라오스 방비엥에서의 세 번째 아침, 창밖으로 흘러드는 햇살은 이미 한낮의 온도를 품고 있었지만
률과 껀군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제 하루, 블루라군에서 마음껏 뛰놀던 그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그 여운이 이토록 길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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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우리에게 묻곤 했다.

“아이들은 학교는 어쩌고 여기 있나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체험학습 공결은 다 쓰고… 지금은 결석 중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참 좋은 경험이에요.”
그 한마디가 여행자이자 엄마인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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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우리는 숙소 앞의 작은 버거 가게로 향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철제 프라이팬 위에서 기름이 ‘치익—’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를 때, 인상 좋은 아주머니는 능숙하게 패티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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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끝에는 오랜 시간 쌓인 온기가 있었다.
꽃보다 청춘에 등장했다며 자랑스럽게 웃는 그 얼굴이 참 정겨웠다.

양이 꽤 많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녀의 망고 서비스와 함께한 식사는
배보다 마음이 더 부른 한 끼였다.
그 후로 매일 그녀는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호객이 아닌 친구처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후에는 태국 친구 쏘씨와 그의 일행을 만나 카약을 타기로 했다.
길 위의 소떼들은 풀을 뜯다 말고 느긋하게 길을 내주었고, 우리는 마치 이 마을의 일부가 된 듯 천천히 걸었다.
“엄마, 저 소들은 다 주인이 없는 거야?”
껀군의 말에 나는 웃었다.
“여기선 다 같이 돌보는 거겠지.”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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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약 팀을 나눌 때, 나는 베씨와 함께였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였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다.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까 망설였지만 그녀의 조심스러운 미소와 다정한 눈빛에 나는 이내 마음이 녹아내렸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시선이 잠시 곁을 스쳐갔지만, 그녀의 환한 웃음은 그 어떤 편견보다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함께 노를 저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 위를 미끄러지며, 내 어깨는 아팠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해질 무렵, 쏘씨가 말했다.
“엄마, 오늘은 우리 삼촌 집에 갈까요?”
나는 망설였다.
“우리가 가면 실례 아닐까?”
하지만 쏘씨는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삼촌 좋아해요. 꼭 가요.”

그렇게 우리는 마을버스도 아닌, 작은 트럭을 얻어타고 낯선 길을 달렸다.
먼지가 이는 흙길, 길가에 서 있던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싸바이디!”를 외쳤다.
저녁노을이 산자락에 스며드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요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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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씨 삼촌의 집은 마을 끝자락에 있었다.
마당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 있었고, 나는 그들이 모두 삼촌의 자녀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냥 놀러 온 이웃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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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가 흩날리는 그 마당은 가난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저 풍요로운 정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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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모는 찬장의 그릇을 모두 꺼내 정성껏 음식을 차려주셨다.

손으로 동그랗게 뭉친 라오스 밥,
매콤한 고기볶음, 향긋한 허브 냄새가 가득한 식탁.

우리는 손으로 밥을 집어먹으며 서툴지만 진심 어린 웃음을 나눴다.
삼촌은 맥주잔을 내밀며 말했다.
“라오스에서는 손님이 가족이에요.”

그날 밤, 방비엥의 별빛은 유난히 따뜻했다.
률과 껀군은 삼촌의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웃고, 나는 그 웃음소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여행은 단지 떠남이 아니라, 우리 안의 벽을 허무는 과정이었구나.

여행이란 결국, 낯선 곳에서 나를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배움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방비엥의 마지막 밤, 나는 그렇게 다정함을 배우고, 이제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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