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알람퐁역에서 농카이까지, 기차 위의 밤

오늘, 우리는 달리는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by 미나래

후알람퐁역에서 농카이까지, 기차 위의 밤

2017년 6월, 태국 방콕. 우리는 라오스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밤을 기차 위에서 보내기로 했다.
일정은 언제나 즉흥적이었고, 나는 매번 그 즉흥을 ‘계획’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들과 함께라서 무모한 용기도 조심스러운 책임감으로 변하던 시기였다.


비 오는 거리, 흥정의 나라 태국

후알람퐁역으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카오산로드에서 택시를 잡는 순간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운전기사의 표정은 이미 한껏 찌푸려 있었다.
숙소 주인은 호의를 베풀며 흥정을 도와줬지만 결국 120밧까지 깎는 데 성공하고서도 기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래서 태국은 불편했어요.” 지금도 아이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한다.
그때의 나는, 여행 초반의 작은 불편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던 초보 여행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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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침대로 변하는 순간

후알람퐁역은 생각보다 훨씬 깨끗했다.
기차는 이미 플랫폼에 미리 도착해 있었고,
기차표를 들고 서성이는 우리에게 역무원이 미소를 지었다.
“이 기차 맞아요. 타도 돼요.” 그 한마디가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탄 열차는 방콕에서 농카이까지 가는 10시간짜리 야간열차였다.
아이 둘, 그리고 무거운 배낭 세 개.

우리의 모든 짐과 꿈이 기차 한 칸에 실렸다.

2등석 객실은 의자가 마주 보고 있었고, 밤 9시가 되자 승무원은 조용히 나타나 소독약을 뿌리고, 비닐을 벗겨 새 매트를 깔았다.
순식간에 기차는 침대칸으로 변했다.
커튼이 닫히자 작은 객실 안은 우리만의 잠자리, 낯선 나라의 별빛이 깃든 숙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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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웠던, 너무 따뜻했던 밤

기차 안의 냉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24도, 손끝이 시릴 정도의 차가움.
나는 아이들이 추울까 봐 스카프와 수건을 겹겹이 덮어주었다.
그렇게 잠깐 잠들었다가도, 기차의 덜컹거림에 놀라 깼다.

바깥에는 빗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창문에 맺힌 빗방울이 기차의 속도에 따라 미끄러지며 사라졌다.
아이들은 그 빗소리에도, 진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곤히 잤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이 아이들, 참 단단해졌구나.”

나는 배낭에 자물쇠를 채우고, 돈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기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열차의 리듬은 마치 자장가처럼 우리의 하루를 조용히 달래주었다.


새벽의 농카이, 국경의 문턱에서

새벽 여섯 시.
객실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승무원이 부드럽게 커튼을 젖혔다.
모든 침대는 다시 의자로 변신했다.
아이들은 비몽사몽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곧 라오스다.
처음으로 국경을 넘는 날.
불안보다 설렘이 조금 더 큰 아침이었다.

나는 창문 너머로 새벽빛을 담은 들판을 보며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우린 해냈다.”


후알람퐁역 → 농카이, 태국
2017.6.9 — 기차의 흔들림 속에서, 여행의 리듬을 배웠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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