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진짜 여행자가 되었다.

2017년 6월 카오산로드, 내가 꿈꾸던 여행의 첫 장면

by 미나래

카오산로드, 내가 꿈꾸던 여행의 첫 장면

— 2017년 6월, 방콕에서

숙소에서 밥을 든든히 먹고 나니, 카오산로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몇 해 전부터 마음속에 그려온 여행의 첫 시작은 바로 이곳이었다.
“언젠가 꼭, 배낭을 메고 카오산로드를 걷겠다.”
그 꿈이 현실이 된 오늘 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번화한 거리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공기와 화려한 불빛,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머릿속은 약간의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지도 하나를 손에 쥐고 걷기 시작했지만 두 번째 골목쯤 지나자 방향 감각은 이미 사라지고, 그저 인파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카오산의 거리는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길바닥에 앉아 기타를 튕겼다.
여기서는 누구도 이상하지 않았다.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여행자들의 행렬.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 순간, “나 이제 진짜 여행자구나.” 이 말이 마음속에서 뭉클하게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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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아이스크림의 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번화가에서 15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늦은 밤, 불빛이 줄어들자 긴장이 살짝 스며들었다.
그때, 조용한 골목 한켠에서 작은 노점이 눈에 들어왔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파는 젊은 부부, 그 옆에는 고무다라이 안에서 놀고 있는 세 살쯤 된 아이가 있었다.

화려한 거리의 중심에서 밀려나 한적한 곳에서 장사를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우리 이 아이스크림 사 먹자.”

작은 컵 안의 달콤한 코코넛 향, 그리고 엄마 옆에서 말없이 놀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여름날, 나무 그늘 아래 고무다라이 안에 나를 눕혀두고
밭일을 하시던 부모님의 모습.
“그땐 참 힘들었지.”라며 회상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한입 먹으며 그 부부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화려한 카오산의 불빛보다 그 밤, 그들의 미소가 더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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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밤, 그리고 엄마의 시선

밤이 깊어지자 거리의 색깔이 달라졌다.
음악 소리는 점점 커지고, 술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이 넘쳤다.
아이들과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풍경이었지만, 나는 그 자유로움 속에서도 묘한 부러움을 느꼈다.
‘다음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함께 맥주 한잔할 수 있을 때, 다시 이곳에 오자.’
그날의 약속이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너무 더운 밤이었다.
우리는 스웬슨즈 아이스크림 카페에 들어갔다.
달랑 한 개만 시켜놓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마음껏 즐겼다.
서로 눈치를 보며 웃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천국 같았다.

노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거리는 조금씩 조용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제는 길이 익숙해져 처음의 두려움 대신 자신감이 피어났다.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 우리 꽤 잘했지?”

아이들은 여행의 리듬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걷고, 보고, 느끼고, 웃으며 사는 일상.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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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로드, 방콕
2017.6.5 — 배낭을 메고 걷던 첫날 밤, 나의 꿈이 현실이 되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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