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외사친

말보다 마음으로 통했던 저녁의 기억

by 미나래

질리안 가족과 말레이시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싱가포르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레고랜드에서 하루 종일 뛰놀던 아이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지쳐 누웠고, 나는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여행의 먼지를 털어냈다.

그때 전화 한 통이 왔다.

신디였다.
“우리가 저녁 준비했어요. 조금 있다가 갈게요!”
그 말에 순간 목이 메었다.

밤 7시, 땀에 흠뻑 젖은 신디 가족이 박스 두 개를 가득 들고 현관 앞에 섰다.
중국식 국수, 킹크랩, 그리고 직접 만든 디저트까지. 한 손엔 음식, 한 손엔 정성이 묻어 있었다.

그들은 버스를 갈아타고, 땀을 비처럼 흘리며 이 음식을 들고 왔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식탁 위에는 음식보다 더 따뜻한 온기가 흘렀다.
싱가포르, 한국, 그리고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언어의 경계를 넘어 이어졌다.

“너무 위험하지 않아?”
“괜찮아, 아이들과 함께니까 더 용감해져.”

나는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고, 신디는 내 불면증을 걱정해주며 자신의 경험담을 조용히 들려주었다.
옆에서는 알렉스가 직접 구운 빵을 꺼내며 “내일 등산할 때 먹어요.” 그 말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울렸다.

사실 나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
콩글리시와 손짓, 웃음으로만 대화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어떤 오해도 없었다.
말은 다르지만 마음은 통했다.
‘진짜 친구는 말로 만드는 게 아니구나.’
그때 처음, 나는 그 사실을 배웠다.


밤이 깊어도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신디 딸 리옌과 아들 리한은 투정 한 번 없이 조용히 옆에서 책을 읽고, 때때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들 껀군은 그들 곁에서 형처럼, 동생처럼 앉아 있었다.

“이런 게 여행의 선물일지도 몰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좋은 직업도, 멋진 옷도, 비싼 물건도 아니었다.
여행이 나를 부자로 만든 건 이렇게 멀리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이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헤어졌다.
그들의 뒷모습이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연신 손을 흔들었다.

“안녕, 나의 외사친.” 그날 이후로도, 그 따뜻한 마음은 내 여행의 모든 장면 속에서 은은한 불빛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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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2017.6.8
— 언어보다 마음이 먼저 닿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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