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포의 낮, 열기 속에서 배우는 평정

왓포 사원에서 배운 ‘비움의 평화’

by 미나래

왓포의 낮, 열기 속에서 배우는 평정

방콕의 공기는 뜨겁고 무거웠다.
햇살은 숨을 조일 만큼 강했고, 길 위의 공기는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했다.
우린 왕궁을 본 뒤,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왓포로 향했다.
그저 5분 거리라 했는데, 그 5분이 50분처럼 느껴졌다.
길을 헤매다 돌아서고, 또 돌아서다
어느새 신발 밑창은 타들어갈 것처럼 달궈져 있었다.

입구에 다다르자, 불상처럼 고요한 공기가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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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95%가 불교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 숫자보다 더 확실한 건 그들의 일상 속에 스며든 불심이었다.

와불상 앞에 서자, 나는 말을 잃었다.

길이 46미터, 높이 15미터의 거대한 황금빛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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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직전의 순간을 담은 그 불상은 정적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아이들은 경탄의 눈빛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 뜨거운 나라에서, 이 차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낯선 중년의 여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사진, 내가 찍어줄게요.” 그녀의 손짓이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거절해도, 계속 다가왔다.
“카메라 줘요, 내가 잘 찍어줄게요.”
친절과 집요함 사이의 미묘한 경계.
나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노, 땡큐. 폴리스.” 그제야 그녀는 뒤돌아서며 사라졌다.

잠시 후, 정전.
순간 사원의 조명이 꺼지자 황금빛 와불상은 어둠 속에 잠겼다.
천장은 고요했고,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렸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그 순간의 정적은 내 안에 새겨졌다.
‘이곳의 평화는,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 것이구나.’

사원을 나와 다시 햇살 속으로 들어섰다.
체디의 푸른 빛과 불상의 금빛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아이들은 지쳐 있었고, 뚝뚝이 기사들의 호객은 여전히 집요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땀을 닦았다.

‘태국은 정감이 멀다고 느꼈지만, 어쩌면 내가 마음의 거리를 둔 건 아닐까.’

왓포에서의 낮은, 내 안의 불안을 드러내고 그 위에 다시 고요를 덮어주는 시간이었다.

부처의 열반이 그러했듯, 모든 갈등은 결국 스스로를 비우는 연습에서부터 시작된다.

불상은 빛났고,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멈춰 내 안의 소음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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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 왓포 사원 — 2017.6.5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평정은 마음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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