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끌렁의 열기, 담넌의 물결 속에서
오늘은 여행의 끝을 장식할 ‘시장 투어’ 날이었다.
짐은 이미 숙소 한쪽에 정리해두었다.
저녁이면 라오스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지만,
오전만큼은 이 나라의 숨결을 보고 싶었다.
차량이 우리를 픽업하러 왔을 때, 아이들의 눈은 반쯤 졸린 듯하면서도 반쯤은 반짝였다.
같은 차 안에는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이 있었고, 그중 2/3는 한국인이었다.
“여기도 한국인 천지네.” 나는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여행자끼리는 이상한 연대감이 생긴다.
“이곳이 매끌렁 시장이에요.
곧 기차가 지나가니 조심하세요.”
가이드의 목소리는 익숙한 안내 방송처럼 담담했다.
그러나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어떤 여행 책자보다도 생생했다.
기찻길 위에 좌판이 놓여 있었다.
싱싱한 생선, 과일, 향신료, 그리고 사람들의 땀냄새.
햇살은 아스팔트와 철로를 태우고, 시장 사람들의 손끝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멀리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차가 다가왔다.
경적 소리 대신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접어! 접어!”
상인들은 무심한 듯 천막을 걷고, 바구니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기차의 바퀴는 채소 더미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단 몇 초의 일상이었지만, 그들의 손에는 생계가, 그들의 표정에는 담담한 강인함이 있었다.
아이들은 넋을 잃고 바라봤다.
“엄마, 저 사람들은 무섭지 않을까?”
“글쎄, 우리에겐 위험이지만, 그들에겐 오늘도 그냥 하루일 거야.”
기차가 지나간 자리엔 다시 소리와 색이 돌아왔다.
시장엔 다시 생기가 돌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들의 삶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다음 목적지는 수상시장 담넌 사두억.
긴 꼬리배에 올라타자 물결이 살짝 흔들렸다.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들엔 과일, 향신료, 옷, 장식품이 빼곡했다.
“엄마, 저거 사요!”
“얼마예요?”
“850밧.”
“헉… 너무 비싸요!”
“그럼 200!”
흥정은 말 그대로 숨쉬기 같은 일이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아이들은 나를 놀리듯 웃었다.
“엄마, 또 속을 뻔했죠?”
“응, 이번엔 그냥 구경만 할래.”
배는 물결을 따라 천천히 흘렀다.
수상가옥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부엌에서는 냄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삶은 바쁘지만, 이상하게도 평화로웠다.
물 위에서도, 그들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코코넛 음료를 손에 쥐고 있었다.
태양 아래에서 반짝이는 아이들의 얼굴이
이제는 여행자라기보다 이곳 사람 같았다.
학교 친구들이 “전학 갔냐”고 물을 만큼 아이들은 오래 떠나 있었지만,
나는 알았다.
이 며칠이 아이들에게, 교실보다 훨씬 넓은 세상이 되었음을.
매끌렁의 철길에서, 담넌의 물결 위에서, 우리는 여행 이상의 걸음을 배웠다.
‘삶은 위험하고, 치열하며, 그 속에서도 아름답다’는 걸.
태국, 2017.6.6
— 여행의 마지막은 언제나, 사람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