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방비엥, 머무름의 이유

2017년 6월 즉흥으로 정한 6일, 마음이 머무는 시간

by 미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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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카이에서부터 이어진 긴 여정의 끝.
기차와 버스, 그리고 끝없는 도로의 흔들림.
라오스 방비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배낭은 어깨를 짓누르며 숨까지 막아왔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투덜거렸고, 나는 그 말조차 답할 힘이 없었다.

그때 태국에서 만난 쏘씨와 친구들이 다가왔다.
“엄마, 우리 돌아갈 버스표부터 끊어요.”
낯선 땅에서 누군가 나를 ‘엄마’라 부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나는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는 고집스레 내 팔을 잡고 매표소 앞으로 이끌었다.

“언제 돌아갈 거예요?” 그 질문에 나는 한동안 대답을 못 했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계획이 없었다.
그냥 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래서 일정표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우린 일요일까지 머물 거예요. 엄마도 같이요?”
그 말을 듣자, 옆에서 률이 얼굴을 찡그렸다.
“엄마, 여길 6일이나 있다고요? 뭐 볼 게 있다고요?”
나는 잠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엄마 느낌이 그래. 너무 지쳐서 여긴 조금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아.”

그렇게 우린 즉흥으로 6일의 머묾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즉흥’이 결국, 이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방비엥의 첫날 밤,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워 단숨에 잠이 들었다.
창문 밖엔 산 그림자 위로 달빛이 얹혀 있었다.
잠시 눈을 감으면,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무겁게 내려앉았다.

다음 날, 아이들은 여전히 불평했다.
“엄마, 여긴 너무 조용해요. 뭐가 재미있어요?”
그 말이 귀엽게 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말은 달라졌다.
“엄마, 여긴 진짜 평화로워요.”
“라오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착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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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라군의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며
햇살이 물 위에서 반짝이는 걸 보고 있노라면, 처음의 불편함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멈춰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블루라군.
아이들과 쏘씨 일행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익숙한 얼굴, 하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

“혹시… 그 고마운 청년?”
그 청년이 웃으며 다가왔다.

농카이에서 부랑자에게 위협당했을 때,

아무 대가 없이 우리를 도와주던 그 청년이었다.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 이름조차 묻지 못했는데, 이렇게 블루라군에서 다시 만나다니.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기적이란, 아마 이런 만남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제야 나는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007 제임스 본드의 본드요.”
짧은 대답, 그러나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는 우리가 무사히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지 궁금했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감사의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이를 돕는다는 건 그 어떤 여행의 기념품보다 값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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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에서의 여섯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쏘씨의 배려, 본드의 미소,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나는 ‘머무름의 이유’를 배웠다.

여행은 때때로 불편하고, 때로는 벅차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마지막 날 이렇게 말했다.
“엄마, 라오스는 꼭 다시 오자. 사람들이 진짜 친절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 이곳에서 우리는 부자가 되었구나.
돈이 아닌 마음으로.

“방비엥의 여섯 날,
우리는 여행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라오스 방비엥, 블루라군에서
멈춤 속에서 피어난 인연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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