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다섯 번째 놀이공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배운 용기와 웃음

by 미나래

자연과 벗 삼아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놀이공원을 간다는 게 평생 다섯 번 안에 꼽을 일이다.
여행은 수없이 다녔지만, 롤러코스터와 놀이기구의 소음 속에서 보내는 하루는 내 세계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향했다.
고생길이 훤한 배낭여행에 두 아이가 흔쾌히 따라나선 이유—바로 이 낚싯밥에 덥석 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험을, 나는 쉼을 기대하며 같은 길 위에 섰다.

몇 년 전 싱가포르에서 7박 8일을 보내면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 문 앞까지만 가야 했던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때 울먹이며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선했다.
그래서 이번엔 그 문턱을 꼭 넘어야 했다.
밍펑 씨가 일정을 짜며 추천해준 덕분에 망설임 끝에 결정했고, 아이들의 눈빛은 출국 전날부터 반짝였다.

밍펑 씨는 새벽 출근으로 자리를 비웠고, 대신 휴가 중인 퐁핑 언니가 우리의 안내자가 되어주었다.
작년 두 달 동안 함께했던 질리안 가족과의 추억이 있어서인지 이번 여행은 마치 오랜 가족을 다시 만나는 듯 따뜻했다.


질리안은 이미 률의 여동생처럼 자연스러웠고, 껀군은 밍펑 씨의 열렬한 팬이라 그저 행복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두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들떴다.
남편 역시 아이들 못지않게 신났다.
놀이기구를 고르는 모습이 마치 세 아이가 된 듯,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나는 그런 그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묘하게 행복했다.
아빠의 존재는 이렇게 아이들의 웃음을 몇 배로 키우는구나 싶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현실적인 여행자였다.
우리 가족의 여행 불문율은 ‘각출’이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지인들이 주는 용돈을 모아둔 ‘여행통장’이 있었다.
첫 여행 때는 30만 원, 그다음엔 50만 원, 이번엔 놀이동산이 포함된 일정이라 70만 원씩 각출했다.
그렇게 정해진 룰 덕분에 아이들은 돈의 무게를 알게 되었고, 소비 앞에서는 늘 신중했다.

“엄마, 그건 사치예요.”
“짐이 많아지면 힘들어요.”
이제는 나보다 더 현실적인 아이들이었다.
률은 군더더기 없는 간소한 짐을 챙겼고, 껀은 새 티셔츠 하나 사려다도 “지금 옷 충분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조금은 미안했다.
여행은 고생의 연속이었지만, 그 고생 속에서 둘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아이들의 첫 도전—롤러코스터.
질리안은 울먹이며 “무서울 것 같아” 하다가도, 결국 률의 손을 꼭 잡고 줄에 섰다.
남편은 신이 나서 카메라를 들고 그 모습을 찍었다.
출발 직전, 나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겁먹은 얼굴들 속에도 어쩐지 단단한 빛이 있었다.
그리고 몇 분 후, 환하게 웃으며 내려온 아이들이 말했다.
“처음이 어렵지, 이제 하나도 안 무서워요!”
그 말이 어쩐지 인생의 진리처럼 들렸다.

퐁핑 언니와 나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벤치에 앉아 그들을 바라봤다.
언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정말 대단하다. 혼자 아이 둘 데리고 이렇게 다니는 사람, 처음 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무식해서 가능한 거예요.”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절반은 농담, 절반은 진심이었다.

여행지에서 나는 자꾸 오지랖을 부린다.
길을 헤매는 여행자에게 말을 걸고, 계산법을 몰라 서성이는 한국인에게 도움을 준다.
아이들은 “엄마 또 오지라퍼 모드야” 하며 웃지만, 그럴 때마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쥬라기 공원에서는 예상치 못한 물벼락을 맞았다.
퐁핑 언니와 남편이 그날의 ‘당첨자’였다.
온몸이 흠뻑 젖은 언니는 “괜찮아, 재밌어!” 하며 웃었다.
그 밝은 얼굴이 어쩐지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덥혔다.

점심시간, 퐁핑 언니가 현지인답게 자연스레 계산을 도와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함께’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느꼈다.
여행이란 결국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는 걸.

저녁이 가까워오자, 우리는 신디 가족과의 약속을 위해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질리안이 말했다.
“엄마, 처음엔 무서웠는데 자꾸 타니까 너무 재밌어요.
다음엔 률이랑 더 무서운 거 타러 갈래요!”
나는 웃으며 약속했다.
“그래, 내년에 한국 오면 우리 에버랜드 가자.”

그날 밤, 호텔 침대에 누워 온몸이 지쳐있는데도 마음은 묘하게 충만했다.
롤러코스터의 진동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었다.
두려움은 결국 지나가고, 그 자리에 웃음이 남는다는 걸 아이들이 내게 가르쳐준 하루였다.

나는 여전히 자연을 더 사랑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소음 속에서도 평화를, 번잡함 속에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나에게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니었다.
삶이라는 거대한 롤러코스터 위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웃으며 자라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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